김성로 목사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이분론(二分論) 사상 비판”

서론

김성로 목사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이분론 사상 비판”이라는 글의 논지는

1. 김성로 목사가 부활을 강조하는 것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2. 비판의 논지는 십자가 폄하(貶下)이다. 그렇게 수많은 순교자들이 목숨 걸고 전하고 지켜온 십자가 복음을 쓸데없는 것으로 폄하하는 오류를 비판하고 고치기를 원하는 바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를 무시한 채 찌그러진 절뚝 발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는 바이다.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이 동일하게 균형과 조화로 연결되어 있다.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어느 것 하나도 기우러지지 아니하고 온전한 병행상태로 살아 있는 것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다. 능력 면에서도 십자가와 부 활의 능력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다.

3. 필자는 이 글을 통하여 김성로 목사 무엇이 문제인가? 성경은 무엇 을 말씀하고 있는가? 그가 십자가와 부활을 분리(이분화)시킨 것이 어떻게 잘못되었으며 왜 고쳐야하는가를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4. 이분론(二分論)이라는 용어 사용에 있어서-김성로 목사는 그냥 보 기는 십자가도 말하고 부활도 말한다. 그래서 이분론 이라는 용어 사용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의 부 활로 십자가를 봐야 이해가 되고, 십자가에서 완성되지 아니한 구 속을 부활에서 완성했다는 사상은 심각한 오류이다. 이것은 곧 십 자가와 부활의 연속성(連續性)과 병행성(竝行性)과 동질성(同質性) 을 파괴하는 심각한 잘못이다. 이런 견지에서 김성로 목사의 십자 가와 부활에 대한 이분론 사상을 비판하고자 한다.


본론

여러 사람들의 김성로 목사의 신학사상에 대한 비판 자료 요약

‘창조신학연구소’(www.kictnet.net) 소장이며, 김천대, 평택대의 겸임 교수인 조덕영교수는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 무엇이 문제인가”(교 회와이단 212호 2017년 7-8월호)라는 글에서 “김성로 목사의 진솔하고 공개적인 사죄고백이 필요하다” 라고 지적하였다. 조덕영 교수는 여기서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비판을 아끼지 않았 던 여러분들의 주장들을 열거하였다.


다음과 같은 주장들을 먼저 소개한다.

1) 서철원 박사(전 총신대 신대원장, 전 부총장): ‘부활복음’은 성경적 모습을 띄는 것 같으나 그리스도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종파를 만든 것이다(교회와 이단, 부활교 유감, 2016년 12 월호 22쪽).


2) 전 태 목사(고신교단 이단대책연구소장): 김성로 목사는 자신의 잘못된 십자가 사상을 회개하고 공개사과하고 다시 십자가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교회와 이단, 김성로 목사 동영상 설 교에 나타난 십자가 신학사상 비판, 2016년 12월호, 47쪽)


3) 진용식 목사(예장 합동 이단대책위원장): 김성로 목사 부활복음은 안식교의 짝퉁이다. 안식교 주장과 같다(김성 로 목사 부활 복음에 대한 긴급 세미나, 2016년 10월 마지막 주, 한국교 회 100주년기념관).


4) 정이철 목사(예장 합동 목사):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은 부활칭의론, 부활구속론, 이중 제사 등 의 심각한 위험성이 있다. (김성로 목사 부활 복음에 대한 긴급 세미나, 2016년 10월 마지막 주,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


5) 이창모 목사(예장 합동 목사): 미주 남침례회 이재위 목사는 선무당이 칼 휘두르듯 김성로 목사를 대 변하는 일을 멈출 것을 충고한다.(바른믿음).


6) 고경태 박사(예장합동, 조직신학): 김성로는 부활 칭의를 주장하며 26년 목회했다고 자랑하고 있다(교회 와 이단, 2016. 12월호) (위의 주장들은, 여러 교단들의 이단연구지, <교회와 이단>, <바른믿 음> 싸이트에서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많은 분들이 계속해서 김성로 목사의 부활교와 신학사상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총회는 금년 9월에 열릴 총 회에서 2개 노회의 상정 안건이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에 대한 조사 연 구 건이 있다.

김성로 목사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이분론 사상 비판”


제6회 세미나 이후

최근 지난 5월25일부터 제6회 부활복음 전국 목회자 세미나에서 강조 한 몇 가지를 살펴보자.


해외에서 부활 복음 세미나에 참석했다고 밝힌 한 목회자는 “외국에서 교회를 개척 중인데 그곳에서 부활의 복음으로 청년들이 변화되고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부활 복음 에 더욱 큰 확신을 얻고 간다”면서 “특히 ‘부활복음이면 다 된다’는 김 목 사의 메시지가 가슴에 크게 와 닿았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제6회 부활복음 전국 목회자 세미나가 2017년 5월25일 춘천한마음교 회당에서 개최되었고 약 650여 명의 목회자 부부가 참석했다. 김 목사가 부활복음을 접하게 된 주된 요인은 ‘사람이 왜 변하지 않느 냐’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김 목사는 “은사와 능력, 그리고 제자 훈련 등을 했지만 사람이 변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다가 부활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변화가 이뤄졌다”고 말했다.(시사 TIMES, 2017.05.29 10:50)


이 세미나에 참석한 자들 중에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들도 있었 을 것이다. 반면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성로 목사를 추종하는 사람 들도 있었을 것이다.

김성로 목사는 그의 부활교, 부활복음사상을 마치 엄청난 계시나 되는 것처럼 자랑할 것이 아니라 김목사 자신이 그 동안 부활복음을 일관해오 다가 십자가의 도,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는지 반 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수많은 죄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통곡하고 변화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는 그의 말대로 자기 자신이 도리어 십자가를 쓸데없이 즉 무의미하게 전한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보아야 한다. 아니면 그 때는 십자가만 전하고 부활 은 전하지 않았던 절뚝발이 복음이 아니었는가 반성해보아야 한다. 위에 서 언급한 김 목사의 “은사와 능력, 그리고 제자 훈련 등을 하였지만 사 람이 변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다가 부활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변화 가 이뤄졌다” 는 말은 그가 전한 복음이 온전한 복음이 아니었음을 입증 하는 말이다. 김성로 목사는 그 동안 십자가의 능력을 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은사와 능력, 그리고 김성로 목사(자기)의 제자 훈련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 변했는지 깊이 자성해 보아야할 것이다.


실로 중대한 문제

특별히 위에서 언급한 <김 목사의 “은사와 능력, 그리고 제자 훈련 등 을 하였지만 사람이 변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다가 부활을 접하게 되었 다. 그리고 변화가 이뤄졌다”는 주장>을 철저히 파악하고 검증해볼 필요 가 있다.

1) 먼저 김성로 목사가 말하는 은사와 능력은 무엇을 말하는가?

2) 그리고 제자 훈련은 하였지만 사람이 변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 가? 어떤 큰 교회 목사는 평생을 제자훈련에 목숨을 걸었는데 제자 훈련으로는 사람이 안 변하더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 제자훈련이란 무엇인가? 정말 예수님의 제자훈련, 성경의 제자훈련을 한 것인가? 아니면 자기 사람을 만들려고 몸부림쳤든가?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통하여 변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예 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훈련시키셨는데 그 중 한 명 가룟 유다는 배 신자가 되고 말았다. 더 많은 제자들이 변화되어 순교의 제물이 되 었다. 제자훈련!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3) 그리고 “그러다가 부활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변화가 이뤄졌다” 는 말에서 과연 김성로 목사가 부활을 접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를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부활의 예수님을 사도 바 울처럼 직접 만난 것인지, 환상 가운데 만난 것인지, 음성을 들은 것인지, 꿈에서 만난 것인지, 아니면…말씀과 기도 가운데 만난 것 인지 그 만남의 사실과 의미를 김성로 목사는 진솔하게 밝혀야 한 다. 사도 바울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과 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주 님을 만났다는 것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김성로 목사 는 성경적이고 신학적이며 교리적인 바탕 위에서 부활을 어떻게 접 했는가를 말해야 한다. 부활을 접했다는 표현도 아주 애매한 표현 일 수도 있다.

4) 한 가지 의혹이 생기는 것은 만약 김성로 목사가 사도 바울 같이 부 활의 주님을 직접 만났는지 아니면 깊은 묵상, 기도와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는지 추측할 수는 있다. 만약 말씀을 통하 여 부활을 접했다면 부활을 접했다는 경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씀보다 자신의 경 험 즉 부활 접함을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검증해야 한 다.

5) 다른 한 편으로는 만약 김성로 목사가 아주 특별한 체험을 했다고 말한다면 그래서 그가 자신의 체험을 그렇게 강조하고 절대시한다 면 그는 분명 신비주의자이거나 새로운 계시를 주장하는 것이거나 김성로라는 사람을 특수화시키는 작업은 아닌지를 검증해야 한다. 이것이 혹시 새로운 교주로 나가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성령의 역사와 부활신앙 그리고 교회 부흥

김성로 목사는 자신 만만하게 “성령의 역사로 인한 부활 신앙으로 예 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게 될 때 성도의 변화, 교회의 부흥이 일어난다.” 고 외친다. 그렇다면 성령의 역사가 십자가의 복음을 통하여서는 예 수님을 주님으로 믿을 수 없다는 말인가? 십자가 복음으로는 교회는 부 흥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는 그렇게 부활을 강조하다가 정말 중요한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를 폄하하고 말았다.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 “춘천 한사랑교회에 대해 궁금합니다?”라는 질 문에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강조하는 한마음 교회가 아닌지요.” 하는 글과 함께 다음과 같은 댓글이 실려 있다.

“김성로 목사님께서 담임 하시는… 십자가 ,구속의 은혜 ,부활 신앙을 강단에서 주로 다루십니다(특히 부활의 신앙) 해서 초신자 기존 신자들 할 것 없이 설교를 듣고 살아서 역사 하시는 예수님을 체험하며 중생의 기쁨을 증거 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는 귀추가 주목 되는 귀한 교회입니 다.”라는 글이 실려 있다. (들꽃사이로의 답글 2017.06.28)


교회의 부흥(소위 말하는 많이 모이는) 이면에는 목사의 설교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시스템, 교회의 성도들의 소그룹(구역, 속 회, 작은모임), 공동체 활동, 성경공부, 상담, 심방, 상당한 물량을 투자 하는 지역구제 활동, 심지어 주변교회들의 문제들(시험)로 인해 순식간 에 많은 교인들이 수평이동을 하는 경우 등 교회의 환경에 대해서 면밀 히 조사해야 한다. 따라서 춘천한마음교회의 부흥을 설교만으로 말할 것이 아니라 그 교회가 가진 독특한 시스템(드러나지 않고 숨겨진)이 무 엇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바른믿음>에 춘천한마음교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남긴 글이다. “목사들은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 세미나에 참석하여 무엇을 배우 려는지 동기가 의심스럽고 믿음이 의심스럽습니다. 한마음교회는 특정 한 말로 오래전부터 배타적이 되도록 해왔고, 대학생 기숙사를 운영하여 늘려 나간 것이지, 부활을 전해 갑자기 많이 늘어난 것이 아닙니다. 김성 로 목사는 설교를 못 합니다.”


미국과 전 세계 교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미국 시카고 윌로우 크 릭 교회의 담임목사 빌 하이벨스는 지난 2007년 개척 32년 만에 세계적 인 대형교회(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는)를 이룬 뒤 ‘나는 실패했 다’고 정직하게 고백한 이유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윌로우 크릭 교회의 실패론은 10년 전의 이야기다. 교회의 진정한 부흥이 큰 건물, 수많은 사 람들의 회집수, 대형이벤트, 소문난 교회인가를 반성해보아야 한다. 그 렇게 큰 위용을 떨쳤던 로버트 슐러의 수정교회가 부도가 나서 천주교에 팔렸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소위 교회성장세미나에 참석하는 목회자들은 큰 교회 목회자가 아닌 아주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많다. 이 분들은 교회성장에 한이 맺혀 정말 교회 성장 한 번 시켜보자는 일사각오(?) 정신으로 참석하는 분들이 많 을 것이다. 아무리 해도 성장안하는 교회를 보면서 교회가 성장한다면 양잿물이라도 마시겠다는 심정으로 참석하는 것이지 부활복음이 전부이 기 때문에 참석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그 세미나에 참석한 목회자들 가운데 그 다음 주일부터 부활복음을 전했더니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 려오고 교회가 갑자기 급성장을 하더라는 보고가 있는가 묻고 싶다. 교 회성장과 교회부흥은 서로 다르다. 한국에서의 교회성장 사상은 수량, 물량, 대형주의, 성공주의, 마켓팅전략, 메가몰 처치, 문어발 지교회 운 영 등 철저한 세속사상이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부흥은 말씀으로 돌아가고 교회본질을 회복하여 회개를 통하여 성도의 삶이 변화되는 교회 공동체 모임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무엇인가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십자가를 말하지 않고 어떻게 부활을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김성 로 목사는 부활복음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십자가라는 말을 많이 한 다. 그러나 그는 “쓸데없이 십자가만 말한다” 고 외친다(2016.10.19.). 마 치 십자가를 설교하는 것이 큰 잘못인 것처럼 비난한다. “쓸데없이 십자 가만 말한다”고 외치는 김성로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고 외쳤던 사도 바울을 만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지 심히 걱정스럽 다. “사도 바울님 왜 부활을 말하지 아니하고 십자가를 쓸데없이 말했습 니까?”라고 반문할 것인가?


부활을 강조하다 보니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 쓸데없는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다.

김성로 목사의 십자가에 대한 잘못된 사상을 정이철 목사는 다음과 같 이 비평했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 중심의 신앙을 죽은 예수 믿는 신앙! 십 자가에 딱 매여 있는 신앙! 십자가의 예수는 죽은 예수! 십자가가 우상 된 신앙! 십자가에서 부활로 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라는 식으로 늘 말하면서 기독교를 괴이한 부활종교로 변질시켰다.” (인터넷사이트, 춘 천한마음교회 사진, 숫자에 더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 정이철 목사)


위에서 밝힌 대로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 중심의 신앙, 십자가만 붙드 는 신앙, 십자가의 예수는 죽은 예수, 십자가가 우상 된 신앙이라고 말 하면서 부활로 가야된다는 주장은 분명 십자가를 폄하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분리시키는 이분론이 아닐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십 자가와 부활은 분리될 수 없는 진리이다.

설교자는 자기가 말한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말의 영향력이 어떠한가를 예상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말해야 한다. “쓸데없이 십자가 만 말한다”는 그의 표현은 성경말씀(갈6:14,고전1:18 등)에 위배된다. 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행 위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이다. 김성로 목사의 이러한 말은 어떤 경우에도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김성로 목사의 가르침은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해당된다.

십자가는 구원의 완성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19:3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분명 구원의 완성을 선포하신 위대한 선포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선포하신 뒤 예수님은 운명하셨다.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이 구원의 완성이기 때문 이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은 구속의 완성인줄 믿습니 다”라고 외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속 이 완성된 것이 아니고 부활에서 완성되었다는 말인가? 김성로 목사의 말대로 하면 십자가에서 완성되지 못한 불완전한 구원이 드디어 부활에 서 완성되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예수님은 거짓말쟁이다. 라는 외침 이 숨어있는 것이다(이창모,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은 성경으로 위장 한 ‘거짓 복음!’, 교회와 이단 2017년7,8월호 19쪽). 김성로 목사의 이 말 은 마치 십자가와 부활을 밀착시키는 것 같지만 사실상 십자가와 부활 을 분리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김성로 목사의 말은 십자가로 완성되 지 못한 구속을 부활로 완성시켰다고 외침으로 그의 설교를 듣는 자들 로 하여금 김성로 목사가 외치는 부활복음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낸 무서운 거짓 가르침일 뿐이다.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성경대로 증거 하기를 원한다면 “십자가의 구속의 완성 이 부활로 확증 되었습니다”라고 외쳐야 할 것이다. 성경을 전하는 자는 반드시 십자가의 구속의 완성을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쉽게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쓸데없이 십자가만 말한다’든지 ‘십자가와 부활은 구속의 완성인줄 믿습니다’ 등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받을 때는 자신의 실수를 시인하고 사과하고 수정해야만 옳은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누구신가? 왜 죽 으셨는가? 그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믿는다는 말인가? 부활을 통하여 십자가가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무엇 이며 십자가의 죽으심이 무엇인가를 알 때,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된다. 동 시에 부활의 의미와 부활의 사실도 믿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신 자가 복음을 듣고 교회에 출석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십자가를 통 하여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이 놀라운 구원의 완성을, 과거의 구원사건인 동시에 지금 내게 이루어지는 현재적 누림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그 분이 부활하셨다는 부활신앙을 가짐으로 장차 우리가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미래적 구원의 완 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는 지금 부활을 통하여 과거 에 일어났던 십자가와 십자가의 예수를 인지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 은 분명 김성로 목사의 십자가와 부활 사상에 그 자신도 정리하지 못한 혼란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뒤에서 앞으로, 미래에 서 과거로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김성로 목사의 십자 가와 부활에 대한 이분론이 발생하는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

부활사건이 일어났던 그 시대의 유대인이나 예수님의 가족들이나 제자 들에게 있어서는 부활사건이 십자가 사건의 확증이 될 수밖에 없다. 사 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족들 그리고 당시 예수님을 부인했던 많은 사람 들 중에는 예수님의 처절한 십자가의 죽으심만 보고는 예수님을 믿지 못한 자들이 많았다. 이런 자들에게 부활사건이야말로 예수님을 믿도록 하 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성경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뒤에 도 예수님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다. 중요한 사실 하나는 부활사건이 아무리 크고 놀라운 사건이라도 성령의 감동하심이 없이는 예수님을 믿 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부활 이후 초대 교회 제자들, 예수님의 가족들 그리고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500여 문도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직접 만 났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부활의 예수님 을 눈으로 봄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믿었던 것은 아니다.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구주로 믿고 있다.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조명 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친히 말씀하신 증언을 들어보자. 부활하신 예수님 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도마가 현장에 없음으로 부활의 주님을 보 지 못하였다. 늦게 돌아온 도마가 동료 제자들로부터 부활하신 예수님 을 만났다는 부활소식을 접했을 때 그렇게도 분명한 부활을 의심하고 말았다. 도마는 노골적으로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 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 니하겠노라”(요20:25)고 소리쳤다. 이때의 도마는 철저한 회의론자와 경 험주의자처럼 보여 진다. 부활의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셨을 때 의심 많 은 도마에게 부활의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 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요20:29)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부활을 강조하신 것이 아니 고 믿음을 강조하셨다. 십자가도 믿음으로, 부활도 믿음으로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 보다 부활을 그렇게 강조해야 직성이 풀리는 김성로 목사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보고 믿는 자보다 복 되도다”라고 선포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기 바란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 어야 된다고 강조해야지 십자가를 무시하고, 고귀한 십자가를 값싼 십자 가처럼 십자가를 훼손하면서까지 부활을 강조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 가?


부활신앙은 무엇인가를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믿음으로,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믿는 것이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의 강조점을 보면 교인들이 반드시 부활을 목격하여야 비로소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 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보고 믿는 자 보다 더 복되다 는 부활의 주님의 말씀을 무색케 만들어버리고 있다.
부활의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십자가 사건을 증거 해주시지 않는 지금은 (특별한 경우는 예외)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믿지 않는 자 에게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 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 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해들을 때 십자가 에서 죽으신 그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고 믿는 것이다. 사실상 오늘날에 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구세주로 믿을 때 부 활의 그리스도도 믿어진다. 김성로 목사의 ‘부활을 통하여 십자가를 볼 때 십자가가 이해된다’ 는 식의 주장은 부활의 예수를 믿어야 십자가의 예수를 믿을 수 있다는 식의 표현으로 밖에 안 보인다. 김성로 목사의 주 장은 성경 기록을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을 구호처럼 외친다고 구 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부활이 아닌 십자가 지신 그 피 묻은 그 리스도의 손을 굳게 잡고 천국으로 가는 것이다.(조덕영,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 무엇이 문제인가?”, 교회와 이단 2017년7,8월호43쪽)


십자가냐 부활이냐

부활의 예수를 만나야만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이해하게 된다는 주장 은 아주 이상한 주장이다. 예수님의 부활 시대에는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이 시간 순서상 먼저와 나중에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 이후 의 모든 시대는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이 연속적으로 이해되어 믿어져 야 한다. 부활사건을 십자가 사건보다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하나 님의 섭리와 성경진리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예수님 의 탄생사건도 부활사건으로 보아야 이해가 된다면 모든 성경의 진리가 부활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이해된다는 이상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생 각해 보자. 부활이라는 안경을 쓰고 십자가를 보아야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과 믿음의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십자가를 알고 믿 을 수 있다는 말 가운데 어떤 말이 더 합당한가? 오늘날까지 그리스도 인들은 초대교회의 케리그마(Kerygma)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성장, 수난,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 그리고 영원한 통치라는 주제의 흐름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가 갑자기 부활을 강조함으 로 성경의 주제들이 혼란스럽게 되어버렸다. 십자가에서 부활로, 십자가 를 이해하고 부활을 이해하고, 십자가 신앙에서 부활신앙으로의 연속적 인 발전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김성로 목사 는 부활만을 강조함으로 십자가의 위치와 비중을 흔들고, 흐리게 하고 흐트러지게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2016년9월26일 서산본향교회에서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이라는 설 교에서 강조했던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보자”는 사상은 반대로 말하면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으면 십자가가 이해될 수 없다는 뜻이 된 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상은 십자가를 폄하하는 아주 잘못된 사상이라 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십자가는 불완전한 것이다. 십 자가는 십자가 혼자서 이해될 수 없는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다는 역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김성로 목사의 사상은 십자가와 부활을 분리(이분화)하고 십자가와 부활을 분열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김성로 목사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까지 했는데 그 베드 로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서 굴복했다고 하였다. 베드로는 십자 가에 죽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언제 알았는가?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훨씬 이전 마16:16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 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김성로 목사의 주장대로 부 활로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십자가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지 할 수 있다고 한다면 부활을 경험하기 전에 베드로가 고백한 것은 거짓 말로 고백했단 말인가? 예수님은 마16:17에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 니라”고 말씀하셨다. 분명히 베드로는 하나님의 알게 하심으로 자기 앞 에 서 계시는 나사렛 예수가 주님이시오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시라는 것을 인지했다, 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고도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은 김성로 목사의 주장 이 옳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김성로 목사는 부활을 강조하기 위해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의 예수가 누구신줄 인지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 십자가 보다 부활을 먼저, 우선적으로 더 우위에 있다는 효 과를 노리고 있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만고불변의 순서까지 바꾸어 놓고 말았다. 십자가는 반드시 부활을 앞선다. 부활은 어떤 경우에도 십자가를 앞설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로 목사는 자신의 교리 ‘부활복음’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십 자가를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2016.9.26. 서산본향교회 설교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보자” 중에서)


우리의 믿음에는 부활을 통하여 십자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 가 사건과 부활사건이 연속적으로 이해되고 믿어져야 한다. 십자가는 믿 어지는데 부활은 안 믿어진다, 부활은 믿어지는데 십자가는 안 믿어진다 는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 십자가를 믿 고 그리고 동일하게 부활을 믿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다. 그러므로 십 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 십자가 이해와 부활 이해 를 분리해서도 안 된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부활의 그리스도도 분리해 서도 안 된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을 동시에 가르치고 동시에 이해 하고 동시에 믿어야 한다. 초신자의 경우는 아직 부활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신자는 반드시 십자가와 부활을 동시에 믿고 고 백하고 살아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을 분리하거나 전후를 바꾸어서 강 조하고 가르치는 것은 올바른 신학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정상적인 신앙인이 되려면 부활로 십자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신앙에 서 부활신앙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은 연속적 이다. 십자가 이해와 부활 이해는 동시적이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될 수 없는 시공을 초월하여 함께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십자가 죽음 없이 는 부활 사건이 성립될 수 없다. 십자가 죽으심을 이해하지 않는 부활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십자가와 부활도 영원한 진리이다. 영원 한 진리는 항상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영원한 진리는 항상 연속적 동시 적으로 존재한다. 십자가만, 부활만, 재림만 강조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다. 십자가도 완전한 것이요 부활도 완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김성로 목사는 더 이상 부활만(십자가를 폄하 하면서까지) 강조하지 말기 바란다.


사도 바울이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말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누구인지 인지되었을 때였는가? 결코 바울은 김성로 목사의 주장처럼 처음 에는 십자가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부활을 통하여 비로소 십자가의 그리 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믿었던 것인가? 어떤 의미에서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십자가에서 죽은 나사렛 예 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사울이 부활의 그리스도 를 만나는 순간 자신이 부인하고 핍박하던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 이 없으니”(갈6:14)라는 고백이 김성로 목사의 주장처럼 부활을 강조하 는 것인가?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예수님을 바로 알 수 있다는 사 상을 가르치기 위한 것인가? 바울은 어리석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십자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 가, 십자가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가르치기 위하여 갈6:14에서 십자 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율법으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예수 그 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가르치면서 갈2:20에서 바울은 ‘그리스 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강조하고 있 다. 그리고 3:1에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 냐”라고 책망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 할 때 부활을 통하여 그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를 결코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 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그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는 것은 십자가가 얼마 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갈6:12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고, 이어서 14절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 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증거 하였다. 김성로 목사의 주장처럼 바울 사도가 만약 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에 십 자가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갈라 디아서를 기록하면서 부활을 강조했을 것이고 적어도 6장14절 쯤에서는 부활을 강조했어야 한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전체를 통하여 부활을 강 조하는 구절은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강조하고 있 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갈라디아서는 결코 김성로 목사가 주 장하는 것처럼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지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 중 십자가 구원을 가르치는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에베소서, 골 로새서, 히브리서 등에서 강조되고 있는 복음은 십자가 복음이다. 부활 로 구속함을 얻는다는 가르침이 아니라 십자가로 구속 곧 죄 사함이 이 루어진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이쯤에서 김성로 목사는 자신의 부활복음 사상이 실제로 십자가를 폄하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울이라는 청년(사도 바울)이 처음에 불신자로 핍박자로 훼방자로 있 었을 때는 십자가의 예수가 그리스도인줄 전혀 몰랐다. 다메섹 도상에 서 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자신이 핍박하던 나사렛 예수가 하나 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았다. 여기서 우리는 청년 사울의 경우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부활을 통하여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하나님 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김성로 목사의 주장이 적용될 수 없다 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성경을 배울 때 십자가에서 죽 으신 나사렛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안다. 그 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을 믿는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는 모든 경우에 모든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 들이라고 인지하는 것은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6.9.26.서산본향교회 설교 중). 이것이 문제이다.

십자가냐 부활이냐? 이것이냐 저것이냐? 십자가와 부활은 서로 떨어 질 수 없다. 십자가와 부활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앞뒤, 선후, 양면, 두 기둥, 두 수레바퀴와 비교할 수 있다. 십자가와 부활은 선택의 문제가 아 니라 필수불가결의 관계이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를 외면하고 부활을 택했다. 십자가를 져버리고 부활을 택했다.


간증을 통해 나타난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이분화

춘천한마음교회 홈페이지에 실린 간증문의 일부를 소개하고 평하고자 한다.

1) L씨의 경우(여)

L씨는 교회를 다니다가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았는데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의 부활 확증 메시지를 듣고 주님 품으로 돌아왔다는 간증 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L씨는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는데 그들이 정말 변화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였다고 간증하 였다. 그리고 “예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친 채 힘겨운 종교생 활만 하고 있던 내게 부활하셔서 믿을 만한 확실한 증거를 주시고 기쁨 과 참 자유를 누리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고 간증을 끝맺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 양다리 걸치고 오고가다 부활 확증하고 주님 품 으로 - L씨 2017.7.17)


L씨의 간증에는 믿음에 대한 오해가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 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는 간증은 성경에도 없 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제자들은 누구를 믿었는가? 제자들이 고백한 신앙고백은 거짓이었는가? 분명한 것은 제자들은 부활이전부터 예수님 을 믿었다.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그리스도)이심을 믿었 다. 단지 제자들에게는 한 때 부활의 삶이 없었던 것이다. L씨의 간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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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하면 L씨의 변화는 말씀도 아니고 성경도 아니고 성령의 능력도 아니 고 김성로 목사가 전했던 부활이라는 확증 때문이라는 말이다. 차라리 L 씨는 그의 간증에서 내가 변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거를 보여주는 성경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 때 제자 들에게 부활이라는 확증이 있었다면 오늘날의 부활의 확증은 무엇인가? 지금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부활을 확증해주시는 것 은 아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오직 성경이다. 성경 말씀이 예수님의 부활 을 확증해줄 때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믿어지고 변화가 일어나는 것 이다. 죄인들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이 아 니라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이다.


2) Y씨의 경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정말 부활하셨다. 성경에 예언된 대 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 님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다. 부활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나의 주인이심이 확증된 순간, 나의 모든 이념과 사상이 모두 헛것이었고 세 상에 속고 살아왔음이 한 눈에 보였다. 정말 막혔던 가슴이 탁 열렸다.… 중략… 부활로 예수님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이 확증되니 비로소 죄가 보였다. 부활로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주셨음에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내가 주인 되어 내 멋대로 사는 것이 바로 죄였다. 하나님이 없다며 전능자를 무시하고 멸시했던 시간들, 나를 수없이 찾아왔던 예수 님의 발걸음을 비웃음과 조롱으로 쫓아버렸던 수많은 시간들. 그저 하 나님 앞에 ‘이 죄인을 용서해 주세요’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리 고 도마의 고백처럼 ‘예수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십니다’라고 마음 중심에서 고백했다.” (학생운동 혁명 투사에서 귀한 영혼 살리는 복음의 전도자로 거듭나 - Y씨 2017.7.6)

Y씨는 그의 간증에서 “부활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나의 주인이심이 확증된 순간, 나의 모든 이념과 사상이 모두 헛것이었고 세상에 속고 살 아왔음이 한 눈에 보였다” 라고 간증하였다. Y씨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 로 변화되었다든지,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었다든지, 예수님의 십자가 의 보혈 그 크신 사랑으로 변화되었다는 말은 한 마디도 없고 “부활로 예 수님이 하나님이시며 나의 주인이심이 확증된 순간” 삶이 변화되었다고 간증하였다. Y씨의 경우에는 두 가지 부활의 증거가 나타난다. 하나는 김성로 목사의 부활증거, 또 하나는 Y씨 자신이 경험한 부활증거이다. “부활로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주셨음에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내가 주인 되어 내 멋대로 사는 것이 바로 죄였다”는 Y씨의 고백은 그 자 체가 모순이다. 믿을 만한 증거로써의 부활은 무엇인가? 개인적인 경험 으로써의 부활증거로는 예수님을 믿지 못했고 김성로 목사의 부활 증거 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인데 이것은 커다란 모순을 안고 있다. 김 성로 목사가 말하는 ‘부활증거’와 Y씨가 말하는 ‘믿을 만한 증거로 보여 주신 부활’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에 게 하나님께서 부활로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주셨는데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였는데, 똑 같은 부활증거를 김성로 목사가 증거 할 때는 믿어졌다 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과 김성로 목사의 능력 중 누구의 능력이 더 강하고 영향력이 있는가? 죄인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김성로 목사라는 말이 된다. 이것은 엄청난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춘천한마음교회 성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항상 부활로, 부활로, 부 활로 변화가 되었다는 공식적인 간증이 이상하다. 세뇌가 된 것 같고, 다 른 사람들의 부활일변도의 간증에 익숙해져 같은 형식의 간증이 반복되 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을 고백한 글이 있다.

“10년 이상 설교는 거의 들을 수 없고, 전능자가 이 땅에 오셨다 가셨 다. 믿을 만한 증거 부활, 부활에 관련된 성경 구절 몇 마디 그리고 부활 간증 이것이 10년 이상 하고 있는 예배의 전부다. 성도들은 부활에 세뇌 된 상태를 변화라고 착각하고 속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의 신앙이 없다. 누구나 부활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인터넷사이트, 춘천한마음 교회 사진, 숫자에 더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 정이철 목사)


이대로 나가면 부활 이외의 다른 어떤 영적 진리들은 아예 가치가 결여 될 위험도 있다. 그러나 목회 현장에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죄인들의 회개는 천차만별이다. 모 든 사람에게 비슷한 현상이 있을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할 수 는 없다. 그런데 춘천한마음교회의 김성로 목사의 설교나 그 교회 성도 들의 간증을 보면 천편일률적으로 부활만 강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는 몇 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다음과 같은 실례들을 들 수 있겠다.

① 말씀 한 구절로

② 기도하는 가운데

③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④ 성경공부를 통하여

⑤ 부흥성회 집회에서

⑥ 수련회를 통하여

⑦ 혼자서 성경을 읽으면서

⑧ 영력 있는 지도자의 간절한 권면으로 등등 많은 실례들이 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회개와 중생과 믿음이 성령의 역사로 말 미암아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김성로 목사의 부활로 변화된다고 가르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 결국 김성로 목 사의 부활복음에 익숙해지면 부활 이외의 어떤 역사도 부활보다 귀할 수 없다. 모든 동등의 진리들이 부활이라는 우산 아래 묶여있을 수밖에 없 다. 그래서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이분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종합적 비판

우리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언제 어 떻게 알고 믿는가? 복음을 듣고,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고 그는 하나님 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믿는다. 그리고 그 분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는 것도 알고 믿게 된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를 붙들고는 실패 했는데 부활을 붙들었을 때 모든 것이 잘 되더라는 것이다. 기복신앙의 결과는 아닌가?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 지되더라는 김성로 목사의 사상은 다음과 같은 오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1. 자기 경험을 교리화 - 김성로 목사는 성경의 객관적 가르침보다 자 신의 주관적 경험을 절대시하고 교리화 시키고 있다.

2. 성경적 근거가 없는 주장 - 개인적인 체험, 혹은 개인적인 주장을 성경보다 더, 십자가보다 더 강조하는 것이 무슨 신학인가? 김성로 목사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부활을 증거 하였다 는 표현으로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봐야 된다. ‘부활복음이 구원이 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처사요 자신의 억 지 주장이다. 김성로 목사는 초대교회에 대해 더 연구할 필요가 있 다. 사도행전에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 도이심을 얼마나 강조하였는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초대교회 사 도들과 전도자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동시에 강조했지 쓸데없이 십
자가만 강조한 것이 아니다. 행8장의 빌립집사의 전도는 오히려 구 약성경 이사야53장의 고난당하는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 가를 강조하고 전하는 전도였다. 십자가가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 에 십자가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행8장은 사울이라는 청년이 부활 의 주님을 만나 회심한 놀라운 사건이 기록된 9장 바로 앞의 장이 다. 행8장과 9장을 연계하여 생각해보면 8장은 십자가 복음, 9장은 부활의 복음이라고 볼 수가 있다.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은 서로 연 결되어 있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흐름은 십자가에서 부활로 발전해가는 것이지 부활에서 거꾸로 십자가를 바라보도록 기록되어 있지 않다.

3. 대부분의 사람들의 믿음은 헛된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 다시 믿음 을 시작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의 믿음은 부활로 얻어진 것 이 아니라 처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성령님의 도우심 과 말씀의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 들이요 구세주이심을 믿는 것이다. 김성로 목사는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보기 이전에 가졌던 자신의 믿음은 다 거짓되고 헛된 믿음이었 는가를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김목사 가 그 이전에 믿었던 믿음, 그 이전에 알았던 예수는 가짜였다는 결 론에 이른다. 그는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지고 있음에도 반성하거 나 수정하지 아니하고 계속 주장을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잘못 된 신앙생활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실로 무섭고 위험한 일 이 아닐 수 없다.

4. 김성로 목사는 공개적으로 쓸데없이 십자가만 말하고 인성이니 신 성이니 말한다고 비아냥거리는데, 정말 십자가를 전하고 십자가를 강조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쓸데없 단 말인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 는 것은 성경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이다. 부활을 외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을 믿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5. 빌3:10-11에서 사도 바울이 알고자하는 것은 부활로 십자가를 바 라보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알 고자하는 것은 1) 그리스도, 2) 부활의 권능, 3) 그 고난(십자가의) 에 참여(교제)함이었다. 지금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과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하지 아니하고는 예수 그리스 도도 부활의 권능도 알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십자가의 고난이 없이 어떻게 부활의 권능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 라 오히려 십자가를 통과할 때 부활이 보여지고 부활의 권능을 경 험하게 되는 것이다. 죽지 않고는 부활을 먼저 경험할 수 없는 것이 다. 십자가의 죽음이 없이는 다시 사는 부활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 이다.

그래서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은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기 위하여 두 가지를 가르쳤다.

1) 예수님의 죽으심(십자가)을 본받음(빌3:10)

결코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하여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본 것이 아니다. 바울은 오히려 부활의 권능을 말했지 부활로 십자가 를 바라봄을 말한 적이 없다. 예수님의 죽으심(십자가)을 본받지 아니하고 는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에 참여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2)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함(빌3:11)

우리는 빌3:11에서 바울이 ‘부활에서 십자가로’ 거꾸로 돌아온 것이 아 니라 ‘십자가(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에’ 이르게 된다는 비밀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십자가가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십자가를 거쳐서 부활로 나가게 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설계해놓으신 구원의 도표는 십자가가 너무 어려워서 혹은 너무 하찮은 것이어서 그 십자가를 깨닫지 못함으로 부활을 통하 여 십자가를 볼 때 십자가를 깨달아지도록 만들어 놓지 않으셨다. 바울 의 고백처럼 죽은 자 가운데서 즉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부활에 이르 게 되도록 작정해놓으셨다.


김성로 목사는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알게 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눈물 흘리고 통곡하며 통회 자복하고 변화하는 것은 분명히 십자가 의 그 사랑이 너무 크고 놀랍기 때문이다. 결코 십자가를 바라보아도 그 사랑이 깨달아지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때 깨닫지 못했던 십자가의 사랑이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십자 가 앞에서 하나님의 그 사랑에 얼마나 감격하며 울었는지 모른다. 십자 가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증거 하는 증표이기 때문에 십자가 없이는 그 사랑을 깨달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십자가를 바라보아도 그 사랑을 깨 달을 수 없다면 어떻게 십자가가 하나님 사랑의 증표가 될 수 있는가?


부활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증을 주는 경우가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 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경우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부활이 십자가의 확증이 될 수 있다. 언제나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 는 사람(완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에게 는 부활이 십자가를 확증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십자가 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으심 앞에 감격하 는 사람에게는 부활이 십자가를 확증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이미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사랑에 감격하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죽 기로 각오하는 신앙인에게 또 다시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것은 옳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에게는 십자가에서 바로 부활을 보고 부 활의 소망을 가지는 것이지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볼 필요가 없는 것이 다.


이제 김성로 목사는 차라리 이렇게 해야 한다. 십자가를 아무리 보아 도,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아무리 생각해도 안 믿어진다는 자들에 게, 김성로 목사가 그렇게 자랑하고 목 놓아 외치는 개인적인 간증을 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개인적인 간증이 본인에게는 소중하겠 지만 개인적인 간증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체험일 뿐 객관적 계시나 말씀 이 아니다. 또한 개인적인 간증은 모든 사람에게 공적으로 동일하게 적 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 개인의 간증은 어떤 사람에게는 적용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적용될 수 없을 수도 있다. 김성로 목사는 이 점 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빌3:11에 의하면 부활로 십자가를 안다는 김성로 목사의 주장이 얼마 나 성경적이 아니며 성경의 교훈과 반대인가를 알 수가 있다. 상식적으 로 어떻게 십자가가 없이 부활을 알 수 있는가? 어떻게 부활로 십자가를 알 수 있는가? 어떻게 부활이 십자가 보다 더 우선이 될 수 있는가? 김 성로 목사는 성경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하루 속 히 성경을 바로 알고 성도들을 바로 가르치기를 바란다.


재림신앙에 대한 제안

이쯤에서 결론에 앞서서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김성로 목사의 재림신 앙에 대한 제안이다. 그렇게 부활이 중요하다면 왜 재림신앙에 대한 강 조는 없는가? 십자가도 중요하고 부활도 중요하지만,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더 없이 중요한 것이 재림신앙이다. 성경은 예수님 때와 초 대교회로부터 재림에 대한 신앙과 준비가 얼마나 강조되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부활을 강조해도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이 것 역시 균형 있는 가르침이 아니다. 마땅히 그리스도의 재림이 강조되어 야 한다. 왜냐하면 부활이라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과 일치하고 있 기 때문이다. 2천 년 전에 있었던 십자가 사건도 지금 우리에게 현재적 사건으로 중요한 것이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도 성도의 첫 열매로써의 부활이라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중요 한 부활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에서 성취되기 때문에 부활은 마땅히 재림 과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그리고 재림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연속적 동질적 의미가 있다. 김성로 목사가 그의 강의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비 교하면서 부활을 그렇게 강조하는 방법을 특유의 방법으로 채택했다면 부활과 재림을 비교할 때 당연히 재림을 더 강조하는 방법을 채택했어야 옳다. 그러나 정작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 보다, 재림보다 부활만 강조하 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적, 신학적 그리고 교리적으로 볼 때 한 쪽 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죽으셨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과거의 사건 이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현 재적 사건이다. 그렇다면 세상 종말에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사건은 미래적 사건이 된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사 승천하시고 우편보좌에 계시다가 그 언젠가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은 과거와 현재 와 미래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영원하신 주님이시다. 그 분은 알 파와 오메가가 되시고 영원한 현존으로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 다. 이러한 맥락에서 십자가를 무시하고 부활만 강조하며, 부활만 강조하고 재림을 등한시하는 것은 반드시 수정해야할 미숙한 신학이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진리수호연구협회 신학자문위원 고경태 목사가 지적한 내 용이 도움이 되어 소개한다. “우리는 김성로의 미숙한 신학 구도가, ‘부 활에서 시작해서 부활로 끝나는 구도’라고 파악했다. 복음의 모든 요소 를 말하지만, 시작과 끝이 ‘부활 능력’ 뿐이다.”(<교회와 이단>, “김성로 사상에 대한 이해”, 2017,7,8월호 84-85쪽). 그러므로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나 재림을 무시하고, 부활만을 강조, 몰입시키는 얄팍하고 미숙한 신학을 버리고 십자가, 부활, 그리고 재림 신앙을 종합적이고 균형 있는 체계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결론

그 동안 김성로 목사에 대해 여러 차례 글을 썼는데 다시 한 번 바라기 는 김성로 목사가 자신의 비복음적 비성경적 사상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부활 을 강조함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이분화 시키고 십자가를 폄하하는 사상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바란다.

이제는 여러 교단들이 총회적으로 김성로 목사의 신학사상 문제를 상 정하고 여러 연구가들이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연구 발표 하는 것을 예 의주시 하기 바란다.

대화나 공개세미나를 통하여 한국교회적 그리고 함께 걱정하는 연구 가들의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고 어서 빨리 자기 자리를 찾기를 바라 마 지않는다. 차제에 김성로 목사 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십자가와 부활 그 리고 재림 신학(신앙)을 다시 한 번 정립하고 다지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 으로 바라는 바이다.

<참고자료> 월간 「교회와이단」 208호(2016년 12월) 월간 「교회와이단」 212호(2017년 7-8월) 「바른믿음」, 정이철 조덕영,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 무엇이 문제인가?”, 「교회와이단」 212호 (2017년 7-8월) 고경태, “ 김성로 사상에 대한 이해”,「교회와이단」 212호(2017년 7-8월) 인터넷싸이트, “춘천한마음교회 사진, 숫자에 더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정이철 동영상 설교,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 2016년9월26일, 서산본향교회에서 설교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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