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로잔대회 기자회견 후 참석자들(데일리 굿 뉴스자료)
                                                        ▴4차 로잔대회 기자회견 후 참석자들(데일리 굿 뉴스자료)

들어가는 글

로잔선교대회가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온 땅이여, 그의 음성을 들으라!”(Let the Earth Hear His Voice!)는 주제로 시작하여 1989년 2차 대회(필리핀 마닐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주를 선포하자: 모든 교회 구성원들이 모든 복음을 가지고 모든 나라들에게”(Proclaim Christ until He Comes: Calling the Whole Church to take the Whole Gospel to the Whole World)라는 주제와 2010년 3차 대회(남아공 케이프타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고후 5:19)라는 주제에 이어 4차 대회를 희년을 맞이하는 2024년 한국에서 9월 22일부터 28일까지 6박 7일간 인천 연수구 센트럴로 송도 컨벤시아에서 “교회여, 다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Let the Church Declare and Display Christ Together)”라는 주제로 열리게 된다.

선교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이다. (마태복음28장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온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증거 하여야 할 것이다. 복음 증거를 통해 세게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효율적인 선교대회는 필요한 것이고, 또 선교대회를 통하여 선교 정보와 선교 비젼을 나누어가므로 서로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선교의 동원 그리고 효율성과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에서도 로잔선교대회에 관심이 아주 많다.

왜냐하면 많은 복음주의 단체와 개인이 1974년 제1차 로잔선교대회에서 발표한 로잔 언약을 그들의 신앙고백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로잔선교대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일 것이다. 로잔선교대회를 보고 어떤 한 측면만을 강조하거나, 또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덜 강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평가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상의 교회는 완전한 교회가 없듯이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성경을 근본으로 하고 있지만 또한 완전하지 못하므로 늘 공과는 있는 것이다. 그런데 4차 로잔선교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면서 교계에서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우려의 목소리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던 2차 로잔선교대회에서 강사로 선정되어 강의를 진행한 ‘피터 와그너'의 영적 사상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열어가는 말

1. 로잔 선교운동과 한국교회 갈등

2024년 한국에서 열리는 로잔선교대회에 대하여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별히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협회장 진용식 목사, 이하 한상협)와 세계기독교이단대책협회(대표회장 진용식 목사, 이하 세이협)는 2023년 8월 22일 서울 종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로잔의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로잔선교대회가 신사도 운동에 영향받은 이단들이 로잔이 표방하는 것을 모토로 설정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로잔 선교운동의 참여한 인사들이 의구심을 갖게 하는 신학적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진용식 목사(한상협 협회장, 세이협 회장)는 ‘로잔선교대회 3차까지 로잔 선교운동의 내용을 살펴보면 긍정적인 영향만을 보인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로잔대회를 통해 세계 교회에 끼친 부정적 영향이 분명이 있다’라고 말한다.

진용식 목사는 피터 와그너가 출간한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이들이 말하는 ‘지역의 영’이라는 것은 신사도운동가들의 이단 교리로서 귀신이 땅에 붙어 있다는 소위 ‘땅 귀신’ 교리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진용식 목사는 ‘루이스 부쉬의 ‘영적 도해’라는 교리’를 문제 삼아 “10/40창은 지역 귀신이 자리 잡고 있고 결국 그 지역민들이 그 영향으로 미전도 종족이 됐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영적 도해 사상은 선교단체에도 영향을 미쳐 일부 선교단체에 땅 밟기라는 미신적이고 무속적 행위가 나타나게 되었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세계선교 운동이라는 로잔선교대회에서 무속적이고 미신적인 영적 도해를 발표하자 이에 영향을 받는 단체들이 국내에도 발생하게 된다”라고 성토한다.

이어서 진용식 목사는 “인터콥의 문제성 교리(영적 도해, 백투 예루살렘, 지역의 영, 땅 밟기 등)는 로잔선교대회에서 적극적으로 발표된 것”이라면서 인터콥과 로잔선교 운동의 연관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인터콥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로잔 언약에 기초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사역하는 초교파적인 선교단체’, ‘10/40창의 최전방 미전도 종족 개척 선교를 목적으로 1983년에 설립된 초교파적인 해외 선교기관’이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면서 “이처럼 로잔선교대회는 부정적 선교 운동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라고 강조한다. 진용식 목사는 “제4차 로잔대회를 바르게 하려면 제2차 로잔대회에서 무속적, 미신적, 비성경적 신사도 운동의 교리를 발표한 일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로잔선교대회가 신복음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된 선교 운동이고, 신사도 운동의 세계화를 조장했다는 발언도 나왔다.

강신유 목사(광주이단상담소장)는 “로잔 관계자들은 대회를 복음주의 선교 운동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라며 “로잔선교 운동의 뿌리와 과정을 살펴보면 신복음주의자들이 만들었고 고신 총회와 다수의 총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신사도운동가들을 초청하여 강의하므로 신사도 운동의 세계화를 조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강신유 목사는 “로잔선교 운동의 주요 인물은 빌리 그레이엄과 칼 헨리”라면서 "이들은 ‘신복음주의자들’이었다”고 언급하고, “신복음주의는 자유주의자들과 이단들에 대하여 포용적이며 심지어 로마 가톨릭, 안식교, 에큐메니칼 운동과 연합했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는 안식교를 복음적인 기독교라 했다”라고 지적하였다. 강신유 목사는 “2차 로잔대회 5명의 강사가 모두 신사도운동가인 피터 와그너, 신디 제이콥스, 조지 오티스, 루이스 부쉬, 조지 도우슨”이라며 “이후 신사도 운동은 아무 문제가 없는 운동처럼 세계 교회에 적용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라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한국 주요 교단이 참여 금지한 인터콥은 홈페이지에서 로잔선교 운동을 따른다고 선언하고 있다”라고 전하면서 “인터콥 선교회 책자에는 땅 밟기, 영적 도해, 10/40창 등 로잔 운동에서 강의한 신사도운동가의 사상이 그대로 나온다”라고 재차 언급하고 있다.

한편 한상협과 세이협측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한국 로잔위원회 신학 분과위원회는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서 크게 세 가지로 반박하고 있다.

첫째, 신복음주의 문제와 세계교회협의회(WCC), 로마 가톨릭교회와 타협하여 복음을 훼손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이런 주장은 주로 국제기독교협의회(ICCC,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칼 매킨타이어의 신근본주의 분리주의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내용과 유사하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로잔 운동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응하여 일어난 운동으로 WCC의 신학적 견해와는 차이가 있으며, 더욱이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의 신학과 선교에 관한 입장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라고 설명한다.

둘째, 1989년 제2차 로잔선교대회에 피터 와그너와 같은 신사도운동가들이 강사로 나왔다는 주장에 대해서 “1989년 제2차 마닐라 로잔대회의 피터 와그너는 신사도주의적 성향을 보이지 않았고, 1990년대 중반, ‘영적 전쟁’, 지역의 영, 땅 밟기 기도, 영적 도해 등의 비성경적 주장을 했으며, 2001년 이런 영적 전쟁과 연관된 주장을 통해 신사도 운동을 전개했다”라고 알렸다. “로잔 운동은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 운동을 로잔의 공식 대회 문서인 로잔 언약, 마닐라 선언문, 그리고 케이프타운 서약 뿐 아니라 로잔 주제 보고서와 다른 문서에서 옹호하지 않았고, 그를 로잔 운동이 주최한 대회의 강연자로 세우지 않았다”라면서 “복음주의 선교에서 영적 전쟁과 능력대결이라는 주제에 담긴 내용이 선교적 논쟁을 불러왔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신사도 운동의 잘못된 영적 전쟁의 개념과 로잔 운동의 신학과 선교는 무관하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셋째, 인터콥 홈페이지에서 로잔선교 운동을 따른다고 선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잔선교 운동과 인터콥과의 연관성 의혹에 대해서 “인터콥 홈페이지는 로잔 언약뿐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른다 라고 명시한다”면서 “이런 내용을 인터콥이 홈페이지에 게시한다는 이유로 로잔 운동을 문제시할 경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르는 교파들과 신학교들도 문제가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로잔 운동의 문서들은 인터콥에 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으며, 현재 인터콥과는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는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로잔위원회의 반박에 대해서 한상협과 세이협은 재반박하고 있다.

진용식 목사는 ‘피터 와그너가 1989년 제2차 로잔대회에 참석한 것은 신사도 운동을 하기 전’이라는 반박도 있다”라고 언급하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피터 와그너는 ‘제3의 물결’이란 저서를 통해 이미 제2차 로잔대회 전부터 신사도적 문제를 보였다”라고 주장한다.

한국 로잔위원회 총무인 최형근 교수(서울신대)는 “9월에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서 한상협과 세이협의 주장에 대한 입장을 밝히려 한다”라고 전하였다.

한편 이날 발언한 강신유 목사의 주장 대부분은 진용식 목사가 저술한 <인터콥과 로잔운동의 이단성>(비엔비, 2022)이라는 책 내용을 참고한 것으로 로잔대회에 대한 학문적인 평가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와 함께 로잔 운동의 중요한 문서인 로잔 언약, 마닐라 선언, 케이프타운 서약에 대한 신학적 분석과 문제점 지적이 없어서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2. 로잔 선교운동의 태동

1960년에 이르러 세계정세와 교회는 급변하는 상황에 처하고 있었다. 중국 대륙이 공산주의에 휩쓸었으며 그와 함께 제3 세계라고 알려진 많은 나라에서 반 서방주의적 사상의 영향으로 외국 선교사를 배척하는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시대에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으로 흐르고 있어서 복음주의자들은 큰 도전을 받고 있었다. 때에 부흥의 열기도 식어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선교도 위축되고 있었다. 1910년 에딘버러 대회에서 시작된 세계선교 운동의 조직체인 국제선교협의회(IMC, The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가 1961년에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한 부분으로 흡수되면서 선교의 비젼과 열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복음주의 지도자들, 특히 그래함 전도협회의 빌리그래함(Billy Graham) Christianity Today의 헨리(Carl Henry)의 주최로 1966년에 베를린에서 세계전도 대회(The World Congress on Evangelism)가 개최된다.

이 대회는 100여개 나라에서 약 1,200여 명의 복음주의자들이 모였다.

이 대회는 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각처에 있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모인 회의이었다. 이 대회는 변하지 않는 구원의 복음을 확인하고 교회가 할 일이 바로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외쳤다. 복음주의자들은 1966년 베를린대회의 연속으로 1974년의 로잔선교대회 개최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후 1974년 제1차 로잔대회가 1974년 7월 16일부터 10일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게 된다. 이 대회에 150여 국가에서 약 2,700여명이 모였고 한국에서도 65명이 참석하였다. 제1차 로잔 선교대회에서 세계선교 협력의 근거가 되는 신학적 입장과 고백을 로잔 언약(The Lausanne Covenant)에 담아 발표하였다.

로잔 언약

로잔에서 열린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150여 개 나라에서 온 예수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인 우리는, 그 크신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이 우리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며 우리가 서로 교제하게 해주시니 매우 기쁘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시대에 행하시는 일에 깊은 감동을 받으며, 우리의 실패를 통회 하고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복음화 사역에 도전을 받는다.

머리말

로잔에서 열린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150여 개 나라에서 온 예수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인 우리는, 그 크신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이 우리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며 우리가 서로 교제하게 해주시니 매우 기쁘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시대에 행하시는 일에 깊은 감동을 받으며, 우리의 실패를 통회 하고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복음화 사역에 도전을 받는다. 우리는 복음이 온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좋은 소식임을 믿고 이 복음을 온 인류에 선포하여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분부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그의 은혜로 결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신앙과 그 결단을 확인하고 이 언약을 공포하려 한다.

1. 하나님의 목적

우리는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주되신 영원한 한 분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신한다. 하나님은 그의 뜻과 목적에 따라 만물을 통치하신다. 그는 자기를 위해 세상으로부터 한 백성을 불러내시고 다시 그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어 그의 나라를 확장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그의 부름받은 백성을 그의 종과 증인이 되게 하신다. 우리는 종종 세상에 동화되거나 세상으로부터 도피함으로 우리의 소명을 부인하고 우리의 사명에 실패하였음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이를 고백한다. 그러나 비록 질그릇에 담겼을지라도 복음은 귀중한 보배임을 기뻐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이 보배를 널리 선포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하려고 한다.(사 40:28; 마 28:19; 엡 1:11; 행 15:14; 요 17:6, 18; 엡 4:12; 고전 5:10; 롬 12:2; 고후 4:7)

2. 성경의 권위와 능력

우리는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믿으며, 그 진실성과 권위를 믿는다. 성경 전체는 기록된,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으로서, 그 모든 가르치는 바에 전혀 착오가 없으며, 신앙과 실천의 유일하고도 정확무오한 척도임을 믿는다. 우리는 또한 그의 구원 목적을 이루는 말씀의 능력을 확신한다. 성경 말씀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불변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오늘도 그 계시를 통해 말씀하신다. 성령은 어떤 문화 속에서나 모든 하나님 백성의 마음을 조명하여 그들의 눈으로 이 진리를 새롭게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온 교회에 더욱 더 풍성하게 나타내신다.(딤후 3:16; 벧후 1:21; 요 10:35; 사 55:11; 고전 1:21; 롬 1:16, 마 5:17, 18; 유 1:3; 엡 1:17, 18; 3:10, 18)

3.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

우리는, 전도의 방법은 다양하지만 구세주는 오직 한 분이요 복음도 오직 하나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통해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이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부인한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불의로써 진리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모든 종류의 혼합주의를 거부하며,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는 식의 대화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시키므로 거부한다. 유일한 신인(神人)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죄인을 위한 유일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예수님 외에 우리가 구원받을 다른 이름은 없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회개할 것을 원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는 구원의 기쁨을 거부하며 스스로를 정죄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다.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전파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혹은 궁극적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말이 아니며, 또 모든 종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제공한다고 보장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전하는 것은 오히려 죄인들이 사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것이며, 마음을 다한 회개와 신앙의 인격적인 결단으로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로 영접하도록 모든 사람을 초청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모든 이름 위에 높임을 받으셨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입이 그를 주로 고백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갈 1:6-9; 롬 1:18-32; 딤전 2:5, 6; 행 4:12; 요 3:16-19; 벧후 3:9; 살후 1:7-9; 요 4:42; 마 11:28; 엡 1:20, 21; 빌 2:9-11)

4. 전도의 본질

전도는 기쁜 소식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며, 기쁜 소식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죽은 자들 사이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과, 만물을 통치하시는 주로서 지금도 회개하고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자유 하게 하시는 성령의 은사를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전도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하며,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대화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전도 자체는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로 선포하는 것이다. 복음에 초대할 때 우리는 제자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여전히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가 새로운 공동체에 속하였음을 분명히 하도록 부르신다. 전도의 결과는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과 그의 교회와의 협력, 세상에서의 책임감 있는 섬김을 포함한다.(고전 15:3, 4; 행 2:32-39; 요 20:21; 고전 1:23; 고후 4:5; 5:11, 20; 눅 14:25-33; 막 8:34; 행 2:40, 47; 막 10:43-45)

5.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시요,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회 어느 곳에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하여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은 천부적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누구나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착취당해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우리는 등한시해 왔고, 때로 전도와 사회 참여를 서로 상반된 것으로 여겼던 것을 뉘우친다. 물론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또 사회 참여가 곧 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 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인정한다. 이 두 부분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교리와 이웃을 위한 사랑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을 나타내는 데 필수적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소외와 억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불의가 있는 곳 어디에서든지 이것을 고발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거듭난다. 따라서 그들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 그 나라의 의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의를 전파하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주11)(행 17:26, 31; 창 18:25; 사 1:17; 시 45:7; 창 1:26, 27; 약 3:9; 레 19:18; 눅 6:27, 35; 약 2:14-26; 요 3:3, 5; 마 5:20; 6:33; 고후 3:18; 약 2:20)

6. 교회와 전도

하나님 아버지가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그리스도 역시 그의 구속받은 백성을 세상으로 보내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이 소명은 그리스도가 하신 것 같이 세상 깊숙이 파고드는 희생적인 침투를 요구한다. 우리는 우리 교회의 울타리를 헐고 비그리스도인 사회에 스며들어가야 한다. 교회가 희생적으로 해야 할 일 중에서 전도가 최우선이다. 세계 복음화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할 것을 요구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목적의 바로 중심에 서 있으며,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하나님이 지정하신 수단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전하는 교회는 스스로 십자가의 흔적을 지녀야 한다. 교회가 만일 복음을 배반하거나, 하나님에 대한 산 믿음이 없거나, 혹은 사람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거나, 사업 추진과 재정을 포함한 모든 일에 있어 철저한 정직성이 결여될 때, 교회는 오히려 전도의 걸림돌이 되어 버린다. 교회는 하나의 기관이라기보다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문화적․사회적 또는 정치적 체제나 인간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요 17:18; 20:21; 마 28:19, 20; 행 1:8; 20:27; 엡 1:9, 10; 3:9-11; 갈 6:14, 17; 고후 6:3, 4; 딤후 2:19-21; 빌 1:27)

7. 전도를 위한 협력

교회가 진리 안에서 눈에 보이게 일치단결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전도는 또한 우리를 하나가 되도록 부른다. 이는 우리의 불일치가 우리가 전하는 화해의 복음을 손상시키는 것 같이, 우리의 하나 됨은 우리의 증거를 더욱 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직적인 일치단결은 여러 형태가 있고, 그것이 반드시 전도를 진척시키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성경적 신앙을 소유한 우리는 교제와 사역과 전도에 있어서 긴밀하게 일치단결해야만 한다. 우리의 증거가 때로는 사악한 개인주의와 불필요한 중복으로 인해 훼손되었던 것을 고백한다. 우리는 진리와 예배와 거룩함과 선교에 있어서 좀더 깊은 일치를 추구할 것을 약속한다. 우리는 교회의 선교 사역을 확장하기 위해, 전략적 계획을 위해, 서로서로 격려하기 위해 그리고 자원과 경험을 서로 나누기 위해 지역적이며 기능적인 협력을 개발할 것을 촉구한다.(요 17:21, 23; 엡 4:3, 4; 요 13:35; 빌 1:27; 요 17:11-23)

8. 교회의 선교 협력

선교의 새 시대가 동트고 있음을 우리는 기뻐한다. 서방 선교의 주도적 역할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하나님은 신생 교회들 중에서 세계 복음화를 위한 위대하고도 새로운 자원을 불러일으키신다. 그렇게 해서 전도의 책임은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속해 있음을 밝히 보여 주신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자기가 속해 있는 지역을 복음화함과 동시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도 선교사를 보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과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선교 책임과 선교 역할에 대한 재평가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교회들 간의 협동은 더욱 강화될 것이며, 그리스도 교회의 보편성은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성경 번역, 신학 교육, 방송매체, 기독교 문서 사역, 전도, 선교, 교회 갱신, 기타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여러 단체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아울러 이런 단체들도 교회 선교의 한 사역자로서 그 효율성을 평가하기 위해 지속적인 자기 검토를 해야 한다.(롬 1:8; 빌 1:5; 행 13:1-3; 살전 1:6-8)

9. 전도의 긴박성

인류의 3분의 2 이상에 해당하는 27억 이상의 인구(1974년 자료)가 아직도 복음화 되어야 한다.(주13) 우리는 이토록 많은 사람을 아직도 등한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는 우리와 온 교회를 향해 끊임없이 제기되는 비판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는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전례 없는 수용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교회와 모든 선교 단체들이 복음화 되지 못한 이들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세계 복음화를 성취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을 시도해야 할 때임을 확신한다. 이미 복음이 전파된 나라에 있는 해외 선교사와 그들의 선교비를 감축하는 일은, 토착 교회의 자립심을 기르기 위해 혹은 아직 복음화 되지 않은 지역으로 그 자원을 내보내기 위해 때로 필요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선교사들이 겸손한 섬김의 정신으로 더욱더 자유롭게 육대주 전역에 걸쳐 교류해야 한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좋은 소식을 듣고, 깨닫고, 받아들일 기회를 얻는 것이 목표다. 희생 없이 이 목표를 성취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빈곤에 우리 모두가 충격을 받으며, 이 빈곤의 원인인 불의에 대하여 분개한다. 우리 중에 풍요한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은 검소한 생활양식을 개발해서 구제와 전도에 보다 많이 공헌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확신한다.(요 9:4; 마 9:35-38; 롬 9:1-3; 고전 9:19-23; 막 16:15; 사 58:6, 7; 약 1:27; 2:1-9; 마 25:31-46; 행 2:44, 45; 4:34, 35)

10. 전도와 문화

세계 복음화를 위한 전략 개발에는 상상력이 풍부한 개척적 방법이 요청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전도한다면,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내리면서도 자신들의 문화에 적합하게 맞추어진 여러 교회들이 일어날 것이다. 문화는 항상 성경을 기준으로 검토하고 판단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인류 문화의 어떤 것은 매우 아름답고 선하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그 전부가 죄로 물들었고, 어떤 것은 악마적이기도 하다. 복음은 한 문화가 다른 어떤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전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은 모든 문화를 그 자체의 진리와 정의의 표준으로 평가하고, 모든 문화에 있어서 도덕적 절대성을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선교는 복음과 함께 이국의 문화를 수출하는 일이 너무 많았고, 때로는 교회가 성경보다 문화에 매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스도의 전도자는 다른 사람의 종이 되기 위해, 개인적인 순수성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겸손히 자신을 온전히 비우기를 힘써야 한다. 또한 교회는 문화를 변혁하고 풍요롭게 만들고자 애쓰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만 한다.(막 7:8,9, 13 창 4:21, 22; 고전 9:19-23; 빌 2:5-7; 고후 4:5)

11. 교육과 지도력

우리는 때로 교회 성장을 추구한 나머지 교회의 깊이를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또한 전도와 신앙적 양육을 분리해 왔음을 고백한다. 또한 우리 선교 단체들 중에는, 현지 지도자들이 그들의 마땅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격려하는 일에 매우 소홀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토착화 원칙을 믿고 있으며 모든 교회가 현지 지도자들을 세워, 지배자로서가 아닌 봉사자로서의 기독교 지도자상을 제시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우리는 신학 교육, 특히 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신학 교육이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모든 민족과 문화권에서 교리, 제자도, 전도, 교육 및 봉사의 각 분야에 목회자, 평신도를 위한 효과적인 훈련 프로그램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러한 훈련 프로그램은 틀에 박힌 전형적인 방법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성경적 기준을 따라 지역적인 독창성을 바탕으로 개발되어야 한다.(골 1:27, 28; 행 14:23; 딛 1:5, 9; 막 10:42-45; 엡 4:11, 12)

12. 영적 싸움

우리는 우리가 악의 권세들과 능력들과의 부단한 영적 싸움에 참여하고 있음을 믿는다. 그 세력들은 교회를 전복시키고 세계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사역을 좌절시키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자신을 무장하고, 진리와 기도의 영적 무기를 가지고 이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교회 밖에서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잘못된 복음, 즉 성경을 왜곡시키며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는 일을 통해서도 적들의 활동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적인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하며, 분별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세속적인 생각과 행위, 즉 세속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예를 들면, 숫자적으로나 영적으로 교회 성장에 대해 주의 깊게 연구하는 것은 정당하고 가치 있는 일임에도, 우리는 종종 이런 연구를 게을리하였다. 반면, 어떤 경우에는 복음에 대한 반응에만 열중한 나머지 우리의 메시지를 타협했고, 강압적 기교를 통해 청중을 교묘히 조종하였고, 지나치게 통계에 집착한 나머지 통계를 부정직하게 기록하는 때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세속적인 것이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어야 하지만, 세상이 교회 속에 있어서는 안 된다.(엡 6:12; 고후 4:3, 4; 엡 6:11, 13-18; 고후 10:3-5; 요일 2:18-26; 4:1-3; 갈 1:6-9; 고후 2:17; 4:2; 요 17:15)

13. 자유와 핍박

교회가 간섭받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주 그리스도를 섬기며,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평화와 정의와 자유를 보장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이 모든 정부에게 지정하신 의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고 유엔 인권 선언에 규정한 바와 같이 종교를 믿으며 전파할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또한 부당하게 투옥된 사람들, 특히 주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이유로 고난받는 우리 형제들을 위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 우리는 그들의 자유를 위해 기도하며 힘쓸 것을 약속한다. 동시에 우리는 그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협박을 거부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불의에 대항하고 복음에 충성하기를 힘쓸 것이다. 핍박이 없을 수 없다는 예수님의 경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딤전 2:1-4, 행 4:19; 5:29; 골 3:24; 히 13:1-3; 눅 4:18; 갈 5:11; 6:12; 마 5:10-12; 요 15:18-21)

14. 성령의 능력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믿는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을 증거하라고 그의 영을 보내셨다. 그의 증거 없는 우리의 증거는 헛되다.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선교의 영이다. 그러므로 전도는 성령 충만한 교회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지 못할 때 그 교회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요, 성령을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온 세계 복음화는 오직 성령이 교회를 진리와 지혜, 믿음, 거룩함, 사랑과 능력으로 새롭게 할 때에만 실현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한다. 주권적인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성령의 모든 열매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고, 그의 모든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을 풍성하게 하기를 기도하기 바란다. 그때에야 비로소 온 교회가 하나님의 손에 있는 합당한 도구가 될 것이요, 온 땅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고전 2:4; 요 15:26, 27; 16:8-11; 고전 12:3; 요 3:6-8; 고후 3:18; 요 7:37-39; 살전 5:19; 행 1:8; 시 85:4-7; 67:1-3; 갈 5:22, 23; 고전 12:4-31; 롬 12:3-8)

15. 그리스도의 재림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친히 권능과 영광중에 인격적으로 또 눈으로 볼 수 있게 재림하셔서 그의 구원과 심판을 완성하실 것을 믿는다. 이 재림의 약속은 우리의 전도에 박차를 가한다. 이는, 먼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고 하신 그의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중간 기간은 하나님 백성의 선교 사역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므로 종말이 오기 전에는 우리에게 이 일을 멈출 자유가 없다. 우리는 또한 마지막 적그리스도에 앞서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리라는 그의 경고를 기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이 땅 위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한 자기 확신의 환상으로 간주해 이를 거부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요, 우리는 그날을 간절히 사모하며 또 의가 거하고 하나님이 영원히 통치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시는 그의 권위에 기꺼이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와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우리 자신을 다시 드린다.(주16)(막 14:62; 히 9:28; 막 13:10; 행 1:8-11; 마 28:20; 막 13:21-23; 요 2:18; 4:1-3; 눅 12:32; 계 21:1-5; 벧후 3:13; 마 28:18)

맺음말

그러므로 이와 같은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결심에 따라 우리는 온 세계 복음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계획하고, 일할 것을 하나님과 우리 상호 간에 엄숙히 서약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이 일에 우리와 함께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언약에 신실하도록 그의 은혜로 도와주시기를 기도한다. 아멘. 할렐루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선교대회는 로잔 언약을 발표하므로 신학적 입장과 세계선교에 협력적 근거를 마련하여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974년의 로잔 선교대회에서 공감하며 만들어 발표한 로잔 언약을 통하여 세계선교의 이정표를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2차, 3차 로잔선교대회

2차 로잔 마닐라 선교대회는 신사도 운동의 이단성을 규정하기 전(고신 2007/57/지극히 불건전한 사상, 관련 저술 탐독 금지, 강사초빙 금지, 집회 참여 금지; 합신 2009/94/이단성, 참여 금지)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되었다. 이때 신비주의 사상을 ‘신사도 개혁운동’이라고 새로운 용어로 명명한 ‘피터 와그너’가 강사로 선정되어 강의를 하므로 문제의 요인을 만들었다.

신사도 운동이 교회의 문제를 야기시키고 교회 갈등의 요인이 되기 전 1989년에 로잔선교대회에 ‘피터 와그너’가 강사로 세워지기는 하였지만, 이미 이때 ‘피터 와그너’의 영성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자료에 의하여 나타나고 있다.

피터 와그너의 ‘영적인 변질은 빈야드 운동의 선구자 존 윔버와의 교제를 통해 일어났다’라고 볼 수 있다. 피터 와그너는 자신의 책에서 “1975년부터 시작된 존 윔버와의 교제를 통해 자신에게 결정적인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 하였다라고 고백한다”(피터 와그너, 피터 와그너의 제3의 바람(정윤교 역), 49).

피터 와그너와 존 윔버와의 관계는 1981년에 존 윔버가 피터 와그너에게 플러 신학교에 자신의 빈야드 운동 신학을 강의하는 과목을 개설하자고 제안한다. 피터 와그너는 존 윔버를 신뢰하므로 학교 측과 대화하여 존 윔버의 제안을 허락한다. 1982년 1월, 존 윔버가 피터 와그너에게 제안한 내용은 이루어졌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소문난 플러 신학교에서의 강의 “이적, 기사, 그리고 교회성장”(냐훈, Wonders and Church Growth)은 그렇게 시작되었다(피터 와그너, 피터 와그너의 제3의 바람(정운교 역), 51-52). 그러므로 피터 와그너가 본격적으로 ‘신사도개혁운동 신학자로 변하기 시작한 때는 1982년이다.’라고 볼 수 있다.

1984년부터 피터 와그너는 치유 집회를 인도하기 시작한다.

그를 통하여 주로 나타난 치유 능력은 이후의 금가루 이적과 함께 신사도개혁운동 초기에 많이 나타난 ‘짝다리 치유’라는 종류였다. 1984년 4월, 와그너는 어느 교회의 예배에서 “집단 치유를 주도하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일시에 50명이 넘는 사람들의 짝다리를 교정하는 치유를 일으키기도 했다(피터 와그너, 피터 와그너의 제3의 바람(정운교 역) 56).

피터 와그너는 2004년에 저술한 자신의 책에서 자신이 로잔선교 2차 대회 필리핀 마닐라에 강사로 참여 하였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 신사도 운동의 주요한 주제인 ‘지역의 영들’에 대한 강의를 하였다라고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과정이 시작된 것은 흔히 제2차 로잔회의라고 부르는 역사적인 세계 복음화 회의에서였다. 세계 복음화를 위한 로잔위원회는 전 세계에서 4,500명의 지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1989년에 마닐라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적어도 다섯명의 연사들이 다른 참석자들 대부분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서 강의하였다. 그 주제는 ‘지역의 영들’(territorial spirits)이었다. 나도 그 다섯명의 연사들 중 하나이었다”(피터 와그너,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김영우 역), 129). 또한 “이 연사들 중 일부는 사탄이 특정한 지리적인 영역 뜰을 영적인 어두움에 가두어 놓기 위해 그 지역들을 영적으로 관할하는 일을 위임한 마귀적인 정사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피터 와그너,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김영우 역), 130)라고 주장한다.

1989년 피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로잔선교 제2차 대회는 1974년 로잔 언약에 기조에서 “마닐라선언문"(The Manily Manifesto)을 발표한다.

‘마닐라 선언문’은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로잔선교 마닐라 대회에서의 강사 선정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라고 보여진다. 물론 대회에 참석한 모두가 강의에 영향을 받았다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참석자들 일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세계선교의 잘못된 신학적 사상, 복음의 변질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제3차 로잔선교 대회는 2010년 10월 16-25일 동안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다. 3차 로잔선교 대회는 1910년에 열렸던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집회이기도 하였다.

제3차 로잔선교 대회에서도 로잔위원회는 1, 2차 대회와 마찬가지로 3차 로잔대회에서도 ‘케이프타운 서약’을 만들어 내놓았다. 케이프타운 서약의 내용은 1차 로잔대회의 ‘로잔 언약’과 2차 로잔대회의 ‘마닐라 선언’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의 역사적 연속선상에 서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3차 로잔선교 대회는 복음주의 선교와 신앙을 위협하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2차 로잔대회가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 주의를 복음주의 속으로 유입시키는 통로가 되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면, 3차 로잔대회는 종교 다원주의를 복음주의 속으로 초대하는 마당이 되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염려스러운 모습을 보게 된다. 3차 로잔선교 대회는 WEA(World Evangelical Allance)와 로잔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하였다. ”198개 국가에서 4,000여명의 교회지도자들이 참석하였다." 한국에서도 100여명이 참석하였다. 그리고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로마 카톨리 교회, 동방 정교회(Orthodox Church)등에서의 방청객들(Observers)도 참석하였다(로잔 운동의 역사와 신학, 조종남 박사, 44).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언론 보도에 의하면 로마교회, WCC, 정교회 지도자들이 1,000여명 정도 초청하여 참여하였다고 보도 되었다. 우리가 염려하며 바라보는 것은 WEA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실상 부정하는 로마교회와 협력하고 있다는 것과 WCC와도 분명한 선을 긋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주시하는 것이다.

4. 로잔선교 4차 대회를 바라보면서

제4차 로잔대회는 2024년 9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약 3천~5천 명의 글로벌 선교 사역자가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다고 발표하였다.

한국, 일본을 비롯하여 아시아 지역 로잔이 협력하여 공동 개최하며, 조직위원장은 국제 로잔 마이클 오 총재와 한국 로잔 이재훈 의장(온누리교회 담임목사)이 공동으로 맡게 되고, 준비위원장에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가 맡아 한국 로잔선교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재훈 목사와 유기성 목사는 신사도 운동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이재훈 목사와 유기성 목사의 행적을 보면 신사도적 영향을 가진자들에 대하여 용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손기철 장로(합동, 2011/96/교류 삼가, 집회참석 금지)는 교계에서 이단성 논란이 계속되어온 신사도적 인물이다. 이재훈 목사와 유기성 목사는 손기철 장로가 운영하는 헤븐리터치 센터 개원식에 참석하여 이재훈 목사는 설교로 유기성 목사는 축사로 순서를 맡아 행사에 참여하였다. 손기철 장로는 헤븐리터치 센터가 개원하기 전 오랜기간(期間) 선한목자 교회(유기성 목사)에서 집회를 하였다.

문제는 손기철 장로의 집회가 신사도적이며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신사도적으로 얼마나 많은 불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모른다.

설교에서 이재훈 목사는 “그릿 시냇가에 있는 엘리야처럼 믿음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도 있고, 사르밧 과부 앞에 선 엘리야처럼 다른 사람을 믿음에 참여하도록 해야 하는 상황도 있고, 때로는 불가능 속에서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이 믿음의 방대한 영역에 HTM이 엘리야처럼 온전히 나가기 바란다. 믿음의 역사와 하나님의 임재가 끝없이 일어나는 이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유기성 목사는 축사를 통해 “논란도 많고 오해도 많은 치유 사역의 길을 걸어가는 손기철 장로님 및 HTM과 조금이나마 동역했던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이제 HTM이 독자적으로 선교센터를 갖게 된 것과 더 사역이 풍성하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전하였다. 이어서 유 목사는 “HTM 사역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영적·육적으로 고통받으며 치유를 갈망하는지,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얼마나 치유하기 원하시는지 알게 됐다”“온전하고도 완전한 치유의 역사가 한국교회 안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바라고, 성경적·신학적으로 건강한 바탕 위에서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다. 한국교회가 손기절 장로(합동, 2011/96/교류 삼가, 집회 참석금지)를 규정하고, 신사도개혁 운동은 불건전한 운동이며 이단성이 있으므로 참여 금지 및 강사초빙 금지하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재훈 목사와 유기성 목사 행적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인가? 또한 이들이 진행하고 있는 한국 로잔선교 운동을 지난 2-3차 운동의 문제점들과 어떠한 관계로 볼 것인가?

뿐만 아니라 제73차 대한예수교(고신) 총회에 경기북부 노회에서 4차 세계 로잔대회(신복음주의)에 관한 고신 총회 입장 청원의 건이 상정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로잔대회는 복음주의 선교 운동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그 뿌리와 과정을 살펴보면 신복음주의자들이 만들었고 고신 에서 이단 규정된 신사도운동가들을 초청하여 강의하므로 신사도 운동의 세계화를 조장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주의 선교대회라 하는 로잔대회에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고신 총회와 사상이 맞지 않습니다. 이미 종교 다원주의화 되어 버린 이 대회가 단순한 선교대회라고 보기에는 고신 총회에 속한 대학이나 교수, 선교 기관이 참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 되오니 총회의 분명한 결정을 요청합니다.”라는 4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고신 총회는 보고서가 나오는 3월 이후 한국 로잔 세계 선교대회 참여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나가는 말

2024년 9월 22~28일까지 한국 인천에서 열리는 4차 세계 로잔대회( the Fourth Lausanne Congress on World Evangelism)를 앞두고 한국교회는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온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야 한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되 성경에 근거한 바른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로잔 운동이 성경적 선교를 위해 성경적 선교를 타락시키는 심각한 단체들과 교류하고 협력한다면, 로잔 운동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더군다나 2차 로잔대회를 통하여 전 세계 교회의 선교 지도자들에게 신사도개혁운동 사상을 전파하였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로잔 운동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선교는 누구라도 기독인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선교는 바른 신학과 바른 교리 위에 이루어가야 한다. 복음을 변질 시키는 어떠한 것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4차 로잔선교대회 한국 준비위원회는 오늘의 갈등을 경종으로 듣고 심사숙고하는 가운데 한국 로잔선교 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를 이루기를 바란다.

 

                                                                                                정군효 목사(발행인겸 편집인)
                                                                                                정군효 목사(발행인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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