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 무엇이 문제인가”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주신 그 공간과 시간 속 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여 왔다. 교회의 전통과 신조는 그렇게 형 성되어 온 것이다.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프로테 스탄트(개신교)라는 말은 바로 1517년 10월 31일 오늘날 독일 동부에 있 는 작은 마을 비텐베르크의 성(城) 예배당 작은 문에 마르틴 루터가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위한 면죄부 판매에서 촉발된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 데서 시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해 10월 마지막 주 종교개혁 499년 기념주일을 앞두고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에서는 <김성로 목사, 부활교 사상 비판>이라는 신학 세미나가 있어 필자도 강사로 참여하였 다. 이를 바탕으로 마르틴 루터 이후 종교 개혁자들이 지키고자했던 “십 자가 신앙”을 중심으로 “부활 복음”에는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 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1. 김성로 목사의 <부활 복음 신드롬>에 대한 한국교계와 언론의 반응

김성로 목사의 소위 <부활 복음>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교계와 언론 속 에서 다양한 우려의 반응이 있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참고: <부활 복음 신드롬>에 대한 한국교계와 언론의 명쾌한 비판들)

1) 서 철원 박사(전 총신대 신대원장, 전 부총장): <부활복음>은 성경적 모습을 띄는 것 같으나 그리스도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종파 를 만든 것이다(<교회와 이단>, “부활교 유감“ 2016년 12월호 22쪽).

2) 전 태 목사(고신교단 이단대책연구소장): 김성로 목사는 자신의 잘 못된 십자가 사상을 회개하고 공개사과하고 다시 십자가 신앙을 고 백해야 한다(<교회와 이단>, “김성로 목사 동영상 설교에 나타난 십 자가 신학사상 비판”, 2016년 12월호, 47쪽).

3) 진 용식 목사(예장 합동 이단대책위원장): 김성로 목사 부활복음은 안식교의 짝퉁이다. 안식교 주장과 같다(2016년, 10월 마지막 주, < 김성로 목사 부활 복음에 대한 긴급 세미나>, 한국교회 100주년기 념관 모임).

4) 정 이철 목사(예장 합동 목사):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은 부활칭의 론, 부활구속론, 이중 제사 등의 심각한 위험성이 있다(2016년 10 월, 백주년 기념관 세미나 모임).

5) 이 창모 목사(예장 합동 목사): 미주 남침례회 이재위 목사는 선무당이 칼 휘두르듯 김성로 목사를 대변하는 일을 멈출 것 충고(바른믿음).

6) “ 김성로는 부활 칭의를 주장하며 26년 목회했다고 자랑”(<교회와 이단>, 2016. 12월호, 고경태 박사, 예장합동, 조직신학)

7) 여 전히 의심스러운 김성로 목사의 “하나님의 승부수”(<기독교포털 뉴스>, 정윤석 대표)

8) “ 김성로 목사 문제는 이번에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교회와 이 단>, 정군효 목사)

9) “ 포도원을 허는 미숙한 신학이다”(<교회와 이단>, “김성로 목사의 부활 복음, 무엇이 문제인가”, 필자)

10) 기타: “김성로 부활복음을 반대하는 17인”의 <바른믿음> 글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기독교 핵심 교리에 대한 외침에 대해 왜 그렇게 다양한 기독교인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일까? <부활 복음> 이라고 알려진 이 신드롬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문제를 지 적하고자 한다.


2. 치명적 문제들

1) “이 땅이 아닌 하늘나라 참 성막 제사 주장” 문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있는 성막이 아닌 하늘나라 참 성막에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반드시 부활”(<하나님의 승부수 부활>, 2015, 6.20, 187쪽)


(1) ‘이중제사’를 의심케 하는 표현 김성로 목사는 2015년 자신의 역작인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을 출간 하기까지 지속적으로 “예수님께서 반드시 부활하여 (이 땅에 있는 성막 이 아닌) 하늘나라 참 성막에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렸다”고 설교 하고 교육해 왔음이 위 치명적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이게 바로 김성로 목사 스스로는 ‘이중 제사’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고 변명하나 ‘이중 제사 론’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을 2016년 9월 개정증보판을 내기까지 지속해왔 음을 보여준다.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2) 변명하며 삭제하다 김성로 목사는 이 내용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2016년 개정증 보판에서 수정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만 한 표현”이 아니라 2016년 9월 수정판이 나오기까지 지속적으로 김성로 목사가 외친 부활 교리의 핵심인 것이다. 실수와 오해와 주장은 다르다. 부활복음을 전하면서 어떻게 이 중요한 주장을 실수나 오해라고 얼렁뚱땅 둘러대면서 삭제하여 슬그머니 덮으려 하는가! 이 주장은 <부활복음> 의 핵심이었다.


(3) 종교개혁신앙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주장 김 목사는 분명 <“이 땅에 있는 성막이 아닌”, “하늘나라 참 성막”>이 라는 표현을 자신의 부활 복음의 핵심에 둔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한 마음교회 신자들의 간증에서도 위와 같은 그런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 다. 신자들이 설교와 교재와 저서에서 자주 접했다는 증거이다. 이 구절 에 대해서는 진용식 목사(예장 합동 이단대책위원장)가 “김성로 목사 부 활복음은 안식교의 주장과 같다”(2016년, 10월 마지막 주, <김성로 목사 부활 복음에 대한 긴급 세미나>,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 모임)고 지적 한 바 있다. 김 목사 자신의 독창적 생각이라기보다 그릇된 자료를 접했 음을 의심케 한다. 종교개혁신앙에서는 이런 낯선 주장을 결코 볼 수 없다.


(4) 따라서 한국교회 앞에 공개적으로 진솔하게 고백해야 예수는 이 땅에 있는 성막이 아닌 “하늘나라 참 성막에서 영원한 제사 (히 10:12)를 드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히 9:12) 단번에 이루셨다”(김성 로 책 초판본, 27쪽)는 이 표현은 2016년 개정증보판에서는 슬그머니 사 라진다. 국내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지적에 그가 대단히 당황했음이 분 명하다. 이 문제는 오해가 있어 수정하고 삭제했다고 변명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김 목사는 2016년 수정증보판이 나오기까지 소위 <부활 복음>의 핵심이었던 이 주장에 대해 <한국교회의 공적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자신 이 2016년까지 지속적으로 외쳐온 “이 땅에 있는 성막이 아닌 하늘나라 참 성막”에서의 영원한 제사에 대해 잘못 가르쳐왔으며 이제는 그 부분 을 철저히 버렸음을 고백하고 사죄>해야 한다. 김 목사가 종교개혁신앙 으로 돌아오고 싶다면 반드시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진솔한 중심의 고백이 필요하다.


2) 중생 교리로 본 <부활 복음>의 치명적 문제

(1) 중생 교리의 중요성 중생 교리는 중요하다. 예수님은 표적만을 보고 예수를 하나님이 함께 한 랍비로 여긴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거듭남에 대해 역설한다. 예수는 다른 어떤 것도 강조하지 않으시면서 니고데모에게 오직 중생(거듭남)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중생은 전적으로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하나님 의 행하심(God’s doing)이다. 즉 중생 교리는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전 적인 은혜(Sola Scriptura)의 교리로 연결된다. 성결교단이나 오순절 교 단조차 중생을 중요 교리로 삼을 만큼 중생 교리는 신앙의 핵심인 것이 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유아 구원 문제를 통해 그 중요성을 살펴보자.


(2) <부활복음>으로 풀 수 없는 유아구원 문제 유아들은 자신들의 생식과 출생을 유발하거나 협력하지 않는다. 더욱 이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은 스스로 성령의 소생시키는 사역을 촉진할 수 없다(엡 2:1-10). 사람의 어떤 노력(요 1:12-13)이나 공로(딛 3: 3-7) 로 유발되거나 촉진되는 것이 아니며 경험과 결정들, 행위들로도 유래하 지 않는다(J. L. Packer, Regeneration”, in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 925). 회개와 믿음이 그리스도의 삶에서 나타난다고 해서 중생이 이들에 의지하는 것도 아니다. 중생은 생명에 이르는 회개와 예 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전제조건이며 구원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구 원은 중생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인간은 부활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인간의 행위가 관여할 수 없는 하나님의 행위(God’s doing)인 중 생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성경은 부활을 외치지 않아도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부활할 것임을 말한다. 하물며 그리스도이신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당연하다. 그 부활을 못 믿어서 “쓸데없는 십자가”라며 십자가를 조롱하며 부활을 신 앙 중심에 둔다는 말인가? 주님 부활이 그렇게 의심스러워 부활에 집착 한단 말인가? 김 목사는 정말 어떤 신학적 문제가 있는지 모른단 말인 가? 문제는 유아들이다. 김성로 목사의 주장대로 부활 믿음이 ‘하나님의 승부수’라면 부활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유아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어떻 게 구원 받는다는 말인가? 부활의 믿음이 없었으니 낭패 아닌가? 부활 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말조차 할 줄 모르는 유아들은 무엇으로 구 원받는단 말인가? 유아들이 부활을 모르고도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 음을 중생 교리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유아들은 <부활복음>이나 부활의 믿음이 아니라 중생의 은혜 가운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Sola Gratia)로 구원 받는 것이다!


(3) 중생이 아닌 표적으로서의 부활 복음을 내세우는 억지 니고데모는 바로 표적을 앞세운(요 3:2)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한사람 이었다.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표적이 아닌 거듭남(중생)이 중요함을 일 깨워주셨다. 반면 김 목사는 “성경에 표적이 계속 돼도 절대로 예수가 하나님일 수 없고 부활의 표적을 통해서만 예수의 하나님 되심이 인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그렇다면 주님의 부활은커녕 아직 태어나지 도 않은 그리스도, 즉 마리아의 태중에 있던 예수님을 보고 마리아를 향 해 “내 주의 모친이 내게 오셨다”(눅 1:43)고 말하며 마리아의 복중에 잉 태되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지한 엘리사벳은 사이비 신앙인인가? 부활의 표적 없이 엘리사벳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믿은 것인가. 또한 성 전에 할례를 위하여 들어온, 난지 8일 밖에 안 된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 아 본 시므온과 안나 선지자의 믿음은 부활의 표적을 몰랐으니 엉터리 신앙인가?(눅 2장 참조). 부활의 맛을 보지 못한 십자가 상 구원 받은 강 도나 예수 부활을 전혀 인식하지 못해 십자가에 죽은 예수의 장례를 준비한 마리아들이나 아리마대 요셉의 믿음은 가짜였나? 이 모두가 부활 복음에 모든 초점을 맞출 때 일어나는 신학적 난맥상이다.
종교개혁자들이 부활의 중요성을 모른 게 아니다. 건전한 모든 목사들 도 당연히 부활의 중요성을 김성로 목사 못지않게 잘 안다. 하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왜 종교개혁자들이나 신학자들이 <부활복음>으로 억지 신학 교리를 만들려하지 않는지를 <부활복음> 옹호자들은 똑똑히 알아 야 한다.


3) < 낯선 신학용어>의 분별없는 남발(일명 ‘이 땅 아닌 하늘나라 참 성막 제사’<일명 ‘이중제사론’>, ‘부활복음’(?), ‘하나님의 피’, “하나님의 승부 수 부활”)은 반드시 신학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1) 부적절한 용어 사용 김성로 목사는 스스로 기이협의 제언에 대해 자신이 투박한 표현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렇다. 김성로 목사는 삼위일체의 전유(專有, appropriation) 개념을 잘 이해 못하는 듯하다. ‘하나님의 피’ 라는 용어 사용은 ‘성령 하나님의 십자가’나 ‘성부의 십자가’, ‘성부의 부 활’, ‘성자의 열매’, ‘성령의 피’, ‘성령의 로고스’, ‘성부 하나님의 로고스’처 럼 아주 낯설고 이상한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이다. 이 같은 표현들은 모 두 삼위일체에 대해 구분하지 못하는 심각한 무지인 것이다. ‘아들의 피’, ‘십자가의 보혈’, ‘그리스도의 보혈’ 등 가능한 표현을 두고 굳이 ’하나님 의 피‘와 같은 ‘신앙과 신학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용어 사용을 고집하 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도 적절한 말은 아니다. 승부수라는 용어는 운 동 경기에서 힘이 달리는 선수가 마지막 카드를 사용하여 간신히 힘들게 승리했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이런 내재적 용어는 초월하시고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께 적용하는 말이 아니다. 누가 ‘하나님의 승부수 십자가’라 는 말을 쓰는가? 실제 이런 용어는 제 3계명을 침해할 수 있는 부적절하 고 위험한 말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용을 금해야 한다. 더구나 ‘이중 제사’, ‘부활복음’ 등의 문제가 현재까지 끊임없이 거론되는 것은 이 문제 가 여전히 정리되지 않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2) 새로운 신학용어의 사용 문제 교회가 신앙 선배들이 이룩한 신조와 교리를 존중하는 것은 교회의 역 사를 선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로운 신학적 용어를 사용할 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낯선 신학 적 단어를 빈번히 사용할 때 그 용어는 반드시 신학적 평가를 받아야 하 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최근 미숙한 낯선 신학적 용어의 범람으로 심각 한 교회적 파행과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교회는 성경과 더불어 역사 속 에서 새로운 신학적 용어에 대해 치열한 논쟁과 토의를 거쳐 성령의 인 도하심 속에 바른 교리를 구성하여 왔다. 비록 과학과 기술의 발달 속에 서 다양한 단어들이 탄생하였더라도 이것들을 새로운 신학적, 교리적 용 어로 활용하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 한다. 마리아의 염색체, DNA, 예수 의 염색체 숫자-DNA, 마리아의 월경, 하늘 언어, 신사도, 빈야드 운동, 구도자 중심의 열린 예배(열린 교회가 아님), 한민족 제 2 선민론, 제 2 히브리민족, 부활 후 이 땅 아닌 하늘나라 참 성막 제사(‘일명 이중제사’ ), 부활복음, 금가루현상, ‘신천지’의 제멋대로의 성경알레고리해석 등과 같은 내재적이고 성경적으로 낯선 단어들이 미숙한 신학이나 신비주의 와 결합할 때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닌 불순한 폭발력을 가지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신학 전개에 있어 이 같은 교회사 속의 낯선 용어의 사용은 성령의 사람들 가운데 치열한 신학적 논증 속에 달궈져서 그 진위(眞僞) 를 평가 받은 다음 정금같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3. <부활복음>이 아닌 “십자가 복음”이다

1) 의 인인 동시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인 인간의 취약성- 부활 아 닌 오직 십자가가 살린다!


(1) 부활 구호가 절대로 인류를 살리지 못한다 인간은 대단히 취약한 존재다. 무죄한 아담과 하와가 동산에 추방당하 고 영원한 우주적 붕괴를 초래한 것은 겨우(?)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의 먹거리 언약을 지키지 못한데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한 것이었다. 부활 구호가 인간을 살리는 게 아니다. 인간은 단순히 주문처 럼 부활복음을 외친다고 변화되는 그런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의인인 동 시에 여전히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인 인간은 목사든 성인이든 누구든지 죄악에 노출된 취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부활 구호와 미숙한 간증에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한다. 부활 구호로 변화되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며 인간은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끊 임없이 믿음의 말씀과 선한 교훈으로 양육 받아야 할 존재인 것이다.


(2) 십자가가 살린다! 개신교의 종교개혁신학이 ‘하나님의 의’를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이 아닌 사람 보기에 미련한 ‘십자가의 지혜’(Sapientia crucis) 에서 찾으려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악과 시련과 핍박과 심지어 죽음 조차 기꺼이 감당하려는 진정한 용기와 소망은 부활에서 오는 게 아니 다. 참된 하나님 인식은 인간이 보기에 무기력하고 미련한 십자가에 있 다는 “십자가 신학”에서 오는 것이다. 이것이 마르틴 루터와 칼빈의 종 교개혁 신학이 고수해 온 참 신학이요 바른 신학이다. 성도는 부활이 아 닌 십자가 지신 그 피 묻은 그리스도의 손을 굳게 잡고 천국으로 가는 것 이다. 부활이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담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인류의 무기력함과 비참함을 보라! 그리고 그 십자가에 동산 작은 먹거리 언약에도 넘어져버리는 비참한 모든 인류와 우주를 구원하시는 강력 한 역설이 숨겨져 있음을 보라!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진노 아 래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역설적 사랑 속에 눈물을 쏟고 감격하는 것이 다.


2) 십 자가를 냉소적으로 조롱하며 얻는 ‘부활복음’ 신앙(?)으로는 안 된다


(1) 그리스도로 시작하여 그리스도로 마치는 고린도전서 하나님은 십자가의 미련한 것으로 복음 전하기를 기뻐하신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는 “유튜브 설교”에 보면 빈번하게 “쓸데없이 십자가를 이야 기한다.”는 용어를 사용하여 십자가를 냉소적으로 취급하며 부활 신앙 을 강조한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전 2:2)고 했다. 놀랍게도 부활의 장인 고린도전서 15장조차 실은 부활이 중심은 아니다. 오히려 교만하고 은사를 자랑하고 사두개인을 제외하면 유대인 들도 믿고 있던, 부활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 미숙한 고린도교회 교인들 을 향해 <부활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장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 한 것이었다(고전 1:24). 죄악이 만연하고 미숙한 고린도교인들에게 사 도 바울은 부활의 장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해 그리스도로 시작하여(1-4 절 참조)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57절 참조)로 인도한다. 뿐만 아니라 고 린도전서 전체도 부활이 아닌 그리스도(고전 1:1)로 시작하여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고전 16:23-24)로 끝나는 책임을 기억하라!


(2) 부 활의 심판대 앞에 무엇을 의지하고 설 것인가? 부활 구호? 그리 스도의 피!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단어가 아니다. 모든 인류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들은 무엇을, 누구를 의 지할 것인가? 그때도 사람들은 부활을 의지하겠는가? 부활을 소망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은 복 된 소망이다. 하 지만 십자가를 우롱하듯이 냉소적으로 대하면서까지 부활을 강조하면 안 된다. 인간은 신앙의 유무를 떠나 누구나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심판 대 앞에 서게 될 존재일 뿐이다. 그때 우리들은 십자가가 아니면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 굳이 부활을 강조하려면 오히려 복음, 하나님 나라, 소 망, 복 된 소망, 영원한 소망, 부활의 산 소망,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 님 나라의 복음과 같은 더 복되고 포괄적인 용어가 얼마나 많은가.


(3) 십자가 신학과 다른 길로 가지 말라 부활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쓸데 없다고 폄훼하거나 무리하게 그리스도의 이중 제사론 까지 나아간다면 단번에 드리신(히 9:26; 10:10)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심각하게 모독하 는 아주 위험한 신학이 됨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선배들 이 한결같이 지키고자 했던 종교개혁 신앙이 아닌 “부활하셔서 다시 제 사를 드린다.”는 일명 ‘부활 속죄론’(침례신문 2013. 2. 24일자, 참조=고 전 15:17절의 뜻이 “부활이 죄를 사한다.”는 주장)이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라 부활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일명 ‘부활칭의론’까지 나아가는 다른 기독교인 것이다. 또한 롬 10:9절을 들어 “부활을 믿고 구원받는 다.”는 주장을 보면 김 목사 주장이 얼마나 종교개혁 신앙과 벗어나 있 는지 알 수 있다(이것은 중생과 칭의 교리에 대한 무지와 무시이다).


4. 신학적 질문에 대한 직설적 답변의 필요성

한마음교회를 깊이 잘 아는 듯한 <영분별>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 면서 미 남침례교 비대위장 이재위 목사와 이인규 권사께 어떤 익명의 성 도가 제기했던 다음의 내용은 바로 김성로 목사를 향한 직설적 질문이라 할 수 있으므로 여기 다시 소개한다.

1) “ 고전 15:17절의 뜻이 부활이 죄를 사한다.”는 김성로 목사의 주장 이 맞는가?

2) 김 성로 목사가 “롬10:9절을 들어 부활을 믿고 구원받는다”고 하는 데 동의하는가?

3) 김 성로 목사는 “부활이 구원을 이루기 때문에 십자가가 쓸데없다” 고 하는데 맞는가?

4) 김 성로 목사는 “임종하는 사람에게 십자가를 말하는 게 잘못 되었 다”고 하는데 맞는가?

5) “임종하는 사람에게 십자가보다 부활을 전하는 것”이 맞는가?

6) 김 성로 목사는 십자가에서 예수와 연합하여 옛사람이 죽는 것이 쓸 데없다고 말하는데, 이것도 동의하는가?

7) 김 성로 목사는 “십자가는 땅의 제사이고 부활하여 하늘성소에서 드 리는 제사가 하늘제사”라고 말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동의하는가?

8) 필 자(조덕영 교수)의 질문: 김성로 목사는 부활의 의미를 전혀 모르 는 유아 구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부활복음>, <부활구 호>로 해결?

마지막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구원론의 문제다! 이제 김성로 목사는 이 치명적 문제를 둘러대지 말고 직설적으로 대답해야 한다. 유아들은 < 부활구호>로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 <피 묻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 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그래서 옛 신앙의 대선배들은 부활의 중요성, 부 활의 역사성을 잘 알면서도 <부활복음 신드롬>이나 부활구원론이나 부 활속죄론, 이중제사론, 부활칭의론 등에 매달리지 않고 전혀 말하지도 않은 것이다.

5. 나가면서

1) 열심보다 중요한 <바른 믿음>

부흥이 전부는 아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말처럼 마귀도 선한 부흥에 (미숙한 신학을 동원하여) 맞불을 놓는다. 작금의 일부 한국교회가 그렇 다. 한국교회는 낯선 신학, 이상한 신학으로 양적 성장을 한 낯선 교회 들의 도전 앞에 바른 신앙을 수호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김성로 목사 도 자신이 스스로 건전한 교단 소속 목사임을 늘 표명하고 있기에 끊임 없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자신의 신학적 문제에 대해 특정 단체(기이 협)가 아닌 한국교회 앞에 문제된 부분에 대한 솔직하고 진지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님은 살리는 영이시다. 그리고 목사는 외적 부흥 이 아니라 진리의 바른 길을 제시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제 미숙한 신학 을 계속 고집하지 말고 바른 길로 들어서는 것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일 것이다.


김성로 목사에게 드리는 마지막 권면은 이것이다. 김성로 목사가 좋아 하는 히브리서는 부활복음이 아니라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 게 하려고 영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으니 그런즉 우리도 “그 능욕을 지 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라”(히 13:13)고 한다. 그리고 ‘단번에 드리 신 피 묻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 부활의 “산 소망”은 결코 없다!


2) 당황하지 말고 <바른 고백> 김성로 목사 측은 신학적인 다양한 문제점들이 드러나자 당황하는 기 색을 보이고 있다. 이단과 사이비들처럼 간증자들을 통해 교회를 두둔하 거나 미 남침례교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급조된 단체를 동원하여 옹호하 거나 큰 비용을 들여 대대적 신문 전면 광고전을 펴고 심지어 자신을 비 판하는 합동 측 목사를 신문광고와 급조된 미국 남침례이대위를 동원하 여 이단으로 단죄하려는 무리수를 쓰는 등 힘으로 남을 위협하는 정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자신을 옹호하는 일부 이단전문가를 자처하는 사 람들을 전략적으로 강단에 세워 우호세력으로 만들어 활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건전한 신앙과 신학 토론은 외면하고 호위 무사를 내세워 자신은 그 뒤로 숨으려는 온당치 못한 모습이다.

이런 행태로 볼 때 김 목사는 드러난 잘못된 부분들을 슬그머니 입장 철회하거나 숨기거나 변명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종국에는 교 단을 통한 정치적 해결의 길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한국교회 가 늘 상 지(地)·학연(學緣)과 금권 앞에 그런 미지근한 모습을 보일 때 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교단과 교단신학에 많은 선교비와 장학금을 기부한 김 목사를 교단이 공정하게 다룰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그리 많 지 않다.


하지만 김 목사 문제는 이미 지난 해 합동 교단 총회에 상정되어 있고 고신과 백석 교단의 총회에도 상정되어 있다. 최근 합동교단 이대위원장 에 오른 진용식 목사는 “김성로 목사의 주장은 안식교의 주장과 같다” (2016년 10월 마지막 주, 백주년기념관 긴급세미나)고 지적한 바 있다. 조국의 장자교단임을 자처하는 합동교단의 신학이 정말 살아있는지 금 년 가을 예장합동교단 총회의 결과를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


참 신학은 인간이 고안해 내는 것이 아니다. 참 신학은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지혜(Theologia est infinita sapientia)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 라서 참 신학을 제대로 배운 목사라면 스스로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 가 되서는 절대 안 된다. 미숙함이 나쁜 신학보다 더 악영향을 줄 수 있 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초대 교회 교부 아타나시우스(297-373)가 아리우스(250경-336경)와 벌인 그리스도의 신성과 본질에 대한 치열한 논쟁도 겨우(?) 헬라어 ‘이오타’(ι) 하나로 구분되는 교리적 차이 때문이었음을 기억하라. 이것이 왜 정통교회가 여호와의 증인이나 유니테리언, 자신이 재림 예수임을 외치는 모든 사이비종교들과 다른 지를 구분 짓고 있는 지 잊지 말아야 한다.


김성로 목사는 사실 신학이 잘 정리가 되어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렇 기에 과거 자신의 발언들이 문제가 되는 것에 대해 당황하는 기색을 보 이는 것이다. 과거 자신의 그릇된 발언이나 심각한 신학적 문제들에 대 해 슬그머니 삭제하거나 변명하거나 물 타기하는 정치적 행태를 이미 보 이고 있다. 신학적으로 미숙한 발언이 사실은 종교개혁 신학과 얼마나 충돌하고 있었는지 정말로 깨달았다면 변명으로 일관하지 말고, 사실 자 신이 바른 신학과 바른 믿음에 대해 바르게 교리를 배우지 못해 큰 실수 를 범했었다고 자신이 직접 솔직하게 한국교회와 성도 앞에 인정하고 폐 기하면 된다. 그렇게 선언하고 바른 ‘살리는 목회의 길’로 나서면 된다. 잘못 없다고 버티는 물타기 작전은 왠지 기성 정치인들을 닮은 것 같아 체육인 출신 목회자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정면 돌파하는 체 육인 출신다운 승부수를 보고 싶다. 승부수라는 말은 거룩하신 하나님 이 아닌 이렇게 사람에게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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