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옥주씨의 신학사상에 대한 연구 (1)

본 논문을 쓰게 된 동기

한 장총 이대위에 청원한 신옥주 이단 공동대처에 대 한예수교장로회(합신)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청원서, 8개 교단 이대위에서의 신옥주 문제 제기, 합신 이대위 조사연구보고서, 피해사례들과 상담을 통해 심각함을 깨닫고 신옥주의 서적과 인터넷 동영상 설교와 신옥주 이단성을 연구하는 분들의 글을 살피면서 신옥주 씨가 지나치게 치우쳐 성경을 해석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성경을 해 석해도 사람들이 그렇다고 알아들을 수 있단 말인가?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당혹함을 금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본 총회 유사기독교연구위원회 의 요청을 받고 본격적으로 연구 집필하기에 이르렀다. 신옥주 씨의 책을 한 권 한 권을 구체적으로 비판해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앞으로 각 권별로 비판한 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신옥주 그는 누구인가?

1) 2014년1월3일 출판된 신옥주 씨의 서적에 기록된 이력서 내용은 다음 과 같다.

* 예장(합동) 서울신학교 졸업

* 중앙총회신학대학원대학교 대학원 졸업

*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목연원 수료

* 평촌 필라델피아교회 담임 역임

* 열린문두란노성경연구원 부원장 역임

* 두란노신학연구원 부학장 및 교수 역임

* 예장(개혁총연) 동북노회 중국 파송선교사 역임

* 재미재단법인 WEM 선교협의회 중국 파송선교사 역임

* 강남 총회신학 교수 역임

* 한영신학대학교 목연원 강사 역임

* 열린성경연구원 원장 역임

* (전)한국기독교영적군사훈련원 명예원장

* (전)은혜로선교회 회장

* (현) 은혜로교회 담임목사

2) 합신 이대위 조사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신옥주 목사의 출생 문제와 어느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는지에 대 하여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앙총회신학을 한 것을 봐서 예장(중앙)에서 안수를 받은 것이 아닌가 판단될 뿐이다. 신옥주 목사는 선교사로 중국 에 갔다가 2008년 은혜로 교회를 개척했고 바울사관아카데미는 2009년 8월에 개원했으며 이사장은 영광제일교회 이기웅목사, 원장은 신옥주 목사가 맡았다고 한다.

국내외 13개 지 교회를 만들었는데 일본 오사카, 호주 시드니, 미국 뉴욕과 중국에 4개 교회와 천안, 대전, 진주, 울산, 대구, 제주 등을 비롯 해서 9개 지교회를 세웠으며 2011년 4월에는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 은 혜로 교회에 바울사관아카데미 본원을 두고 여러 곳에 분원을 만들고 있 다. 주로 집중세미나, 공개세미나, 특별세미나를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 하고 끌어들이고 있다고 한다.2)

3) 신옥주 씨의 이단성 요약

신천지나 지방교회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논리에 성경을 가져다 붙이는 성경 짜깁기를 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우종휴 총회 장이 교단지 <기독개혁신보>에 2014년 12월 6일 광고를 냈다. 신옥주 목사가 너무도 많은 성경 왜곡을 하고 이단적 사상을 가지고 있어 다 기 록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또 많은 피해자가 생겨나고 있으니 유의하라는 내용이었다.

예장 합신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는 신옥주 목사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비유 풀이' 등의 성경 해석 △“예수는 인성, 그리스도 는 신성”이라는 주장 △성경의 문자적 기록은 방언(예수의 일)이요 해 석은 방언 통역(그리스도의 일)이라는 주장 △양태론적 삼위일체 이단 설 △130년간 한국의 모든 목회자들이 마귀에게 속아 왔다는 주장 △자 신만이 하나님이 택한 종이라는 자기 우상화 △시한부종말론 주장 등이 다.3)

예장 합신은 신옥주 목사(은혜로 교회)를 99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 정했다. <뉴스앤넷> 연합성명서를 발표하는 주요 7대 교단 이대위원장 들 제하의 보도에는 “예장통합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 합신 등 4개 장 로교단과 기감(감리교) 기성(성결교) 기침(침례교) 등 7개 교단 이단대책 위원장들은 이날 지난 2월 23일의 1차 모임에서 초안으로 작성해 각 교 단 총회장 및 관계자들의 최종 확인과 동의를 거친 연합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 발표 후 이대위위원장 모임 서기인 박호근 목사(예장합동)은 이날 예장백석(총회장 장종현 목사) 교단이 이 모임에 가입됐다며 다음 번부터는 8개 교단 이대위위원장 모임'이 된다고 밝혔다. 박 목사는 또 신옥주 목사 측 은혜로 교회 문제는 거교단적 차원에서 대처케 될 것이 라고 말하고 오는 9월 예정인 교단총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라 는 설명도 덧붙였다.”

NEWS M. COM의 보도에는 전문 시위대 양상을 보이며 좌충우돌 물 의를 일으키고 있는 신옥주 목사와 은혜로 교회가 주요 7개 교단 등 한 국교회의 거교단적 대처 대상으로 지목 되었다고 하였다. 2015년7월9일 8개 교단 이대위에서 '신옥주 목사 대응책 마련 하겠다'고 결의하였다.

구체적인 이단성

A. 성경론

신옥주 씨는 “전 성경(문자로 기록된 성경)은 방언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 방언은 반드시 방언을 통역해야만 하며 문자로 기록된 성경을 풀어 나타내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그리스도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 방언통 역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는 예언이라고 주장한다.4) 신옥주 씨는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인봉한 매매증서다고 하며 매매는 영적으로 복음 을 전하는 것이다고 한다.5)

1. 성경관 - 축자영감론과 유기적 영감론의 문제

1) 이분법

성경 신구약 66권은 하나같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오직 유일무이하고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런데 신옥주 씨는 문자와 의미, 방언과 통역, 예수의 일과 그리스도의 일로 이분화 시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또한 성경은 모두 방 언이며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는 주장이다. 성경을 문자와 뜻/방언과 방언통역/예수와 그리스도/예수의 일(보이는 문자적 기록)과 그리 스도의 일 (문자 속에 담겨있는 말의 뜻)이라는 이분법의 틀 속에 가 두어 놓았다.

2) 잘못된 성경해석법

신옥주 씨의 주장과 같이 성경(聖經)이 방언(方言)으로 기록되어 있 으며, 이러한 방언은 반드시 통역해야만 하고, 통역하지 않으면 영 혼과는 관계없는 말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말은 성경본질에 대한 왜 곡된 사상이다. 또한 문자(방언)로 기록된 성경을 풀어 나타내시고 자 하신 하나님의 뜻 그리스도의 비밀을 밝히는 것을 방언통역이라 고 말하는 것은 전통적인 성경해석법을 무시한 채 자신의 특유의 방법을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을 문자(방언)와 방언통역(뜻풀이)으 로 나누어서 방언(문자)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통역해 내야 제대 로 성경을 아는 것이며 그것이 곧 예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6) 완전 한 통일성을 가진 성경을 두 개로 나누어서 성경의 통일성을 훼손하 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은 신옥주 씨의 성경관은 성 경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의 무지의 소치이며, 전통교회와 정통신학 의 성경해석과는 너무나 다른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신옥주 씨는 자기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비유풀이 방법을 사용한다(신천지와 매우 흡사). 문자 그대 로의 성경(방언)과 성경 해석(방언통역)이라는 방법으로 성경해석을 사사로이 하는 위험에 놓여 있다.

이것은 성경이 금하는 사사로운 해석이다(벧후1:20-21).

3) 방언

성경에는 두 가지 방언이 나온다. ①오순절 방언(행2장) - 성령의 말하게 하심, 통역이 필요 없는 방언, 모든 사람이 각기 난 곳 방언 으로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방언, ②후기 방언 - 성령은 사 중 하나, 못 알아듣는 방언, 통역이 필요한 방언이 있다(고전12 장, 14장).7)

또 하나는 인류사회에서 발생하는 일반적 방언이 있다(각 나라와 족 속과 백성과 방언(계7:9) - 나라, 민족, 백성 중에서 소통하는 말, 같은 그룹끼리 알아들을 수 있지만, 다른 지역 다른 사람끼리는 통 역이 필요하다.(예: 제주도 방언, 경상도, 전라도 방언, 선교지 동일 국가 안에서 서로 다른 지역의 다른 말 - 필리핀의 경우 큰 강이나 큰 산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지역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그래 서 통역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신옥주가 말하는 성경이 방언으로 기 록되었다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다. 성경은 히브리어 헬라어로 기록 되었으며 통역이 필요한 방언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

2. 성경이 정말 방언으로 기록되었는가? (1)

성경이 문자로 기록된 것은 방언이 아니라 문자이다. 구약은 히브리 어, 신약은 헬라어이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 람들에게는 통역이 필요 없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언으로 통역해야 한다. 이러한 통역은 성경의 문자가 그들이 사용하는 문자 가운데 어떤 문자인가를 말하는 것이 통역이 다. 그런데 신옥주의 통역이라는 것은 문자를 다른 문자로 통역하는 것 이 아니라 그 문자 속에 들어 있는 뜻을 풀이하는 것을 통역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통역이 아니라 해석, 주석, 석의라고 말해야 한다. 결코 통 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옥주의 성경 통역은 그 자체가 잘 못된 것이고 출발부터 잘못되었고 방언과 통역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 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신옥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비성경적, 반기독교적 사상이다.

“보이는 문자적인 기록은 예수의 일이요, 문자 속에 담겨져 있는 말의 뜻은 그리스도의 일로 보면 가장 정확하게 보는 방법으로 실수하지 않고 정경 적인 해석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해석법이라고 생각한 다.”8)

이러한 주장은 억지요 지극히 비성경적이다. 어떻게 보이는 문자적인 기록이 예수의 일인가? 보이는 문자적인 기록이 성경말씀이요 그 성경말 씀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다. 히브리어 문자나 헬라어 문자 는 그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와 분리된 예수의 일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 다. 구약의 문자는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그의 백성들에게 무엇을 말씀 하셨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며, 신약의 헬라어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들에게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엇을 말씀하셨는가를 가르 쳐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결단코 방언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로, 헬라인들이 사용하던 헬라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기에는 오직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한 주석(해석, 석의) 이 필요한 것이지 방언통역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마치 문자로 된 성경 을 방언이라고 말하고 그 방언을 풀이하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을 캐내는 것이라고 말함으로 어린 신자들이 대단한 것으로 미혹되어 성경을 바로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기존 교회의 가르침을 왜곡시키는 것은 교회와 성 도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입히는 것이 된다.

3. 성경이 정말 방언으로 기록되었는가? (2)

신옥주 씨는 성경=하나님의 말씀=영의 말씀=비밀=방언이라는 등식 을 만들었다.9)

성경을 문자로 된 방언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이단사상이다. 10) 하나님은 인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사람의 말(언어, 문자)로 성경 을 기록하게 하셨다. 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하게 하셨 다(약간의 다른 언어도 있음). 문자로 기록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성령 의 조명을 통하여 해석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해하도록 하셨다. 성령 의 조명이 없이는 아무도 성경을 해석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인(유일한 해석자인양 말하는 신옥주와 같은)을 통해 성경을 해석하 도록 하지 않으셨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사람,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 성 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실히 믿는 사람을 통해 성경을 풀어주신다. 신옥주 씨는 문자로 된 성경을 통역을 통하여 해석해야 된다고 하는데 원래 성경이 말하는 방언통역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문자가 아님)을 통 역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후기 방언이라고 한다. 사도행전 2장의 사 도적 방언은 통역이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직접 통역하여 주 셨기 때문이다. 사도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했을 때 15개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각 각 자기 난 곳 방언으로 알아들 수 있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에는 통역이 필요 없다.11)

문자로 된 성경은 통역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주석, 석의)해야 한다. 문자로 된 성경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다. 그 뜻은 문자 속에 담겨져 있고 성경 전체에 담겨 있다. 그러 므로 통역을 통해 성경의 뜻을 전달한다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방법이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고 경고하고 있다(벧후1:20). 성경의 모든 예언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 들(선지자들, 사도들,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서 말한 것 (벧후1:21)이므로 반드시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풀이해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방법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은 고린도전서4장6절의 말씀대로 '기록된 성경 말씀 밖으로' 넘어가는 것이요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4. 방언과 통역

신옥주 씨가 말하는 방언과 통역은 무엇인가?

먼저 '방언 = 문자 그대로의 성경', '방언통역 = 설명, 해석'이라는 전제 를 내걸고 시작한다. 그는 성도들이 기도할 때 사용하는 방언을 방언이 라고 하지 않는다(이것부터 헷갈린다).

문자로 된 성경을 방언이라고 하며 이것을 풀이하는 것을 통역이라고 규정한다. 신옥주 씨가 말하는 통역이라는 것은 고린도전서에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로써의 방언의 통역이 아니라 문자로 기록된 성경을 풀이하 여 그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찾아내어 설명(해석)하는 것을 말한다.12) 신옥주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강단에서 복음을 전할 때는 성경적인 방언(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고 육으로 보고)을 하고 반드시 방언통역(그 말 을 상대가 알아듣기 쉽도록 신령한 것을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여 명백하고 명확하게 논리적으로 변증함)을 해야 그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13) 신옥주 씨가 구체적으로 인용하여 주장하는 성경본문은 이사야28:11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 라”는 말씀과 사도행전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 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개역개정 성경에는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라는 말씀이다. 두 본문에는 '다른 방언'이라는 단어가 공 통적으로 나온다. 신옥주 씨는 이사야28:11의 다른 방언은 예언이고 사 도행전2:4의 다른 방언은 성취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신옥주 씨는 이 와 같은 논리로 이방나라 앗시리아인의 방언=예수님의 제자들의 방언이 라는 등식을 조작해 냈다.

그러나 이사야28:11의 다른 방언은 앗시리아 방언을 말하며 사도행전 2:4의 방언(언어)은 보통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사도들이 전한 방언이다. 이사야서의 다른 방언은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 있어서 생소한 앗시리아 방언을 말하고, 사도행전2:4의 다른 방언 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순절 절기를 지키려 예루살렘 모여든 사람들(15 개국)이 각기 동시에 자기 나라 방언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성령의 말하 게 하심을 따라 나타난 아주 특이한 방언(언어)이다. 실제로 사도행전 2 장을 살펴보면 앗시리아 방언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사야28:11 의 방언과 사도행전2:4의 방언을 근본적으로 같은 방언이 아니다.14) 신옥주 씨가 방언통역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알아보자.

“행2:4과 사28:11을 연결시켜 성경의 의미를 찾으려는 행위를 신 목사는 바로 '방언통역'이라고 한다. 즉 '방언통역 = 설명, 해석'이라는 것이다. 그러 나 그는 방언통역이 그러한 의미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 있지는 않다. '방언통역=해석'이라는 것도 성경 본문에서 입증해야 하는데 그의 책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혹시 다른 책에서 언급된 바가 있다면 보고 싶을 정도다. 결국 신 목사의 방언, 방언통역에 대한 그의 교리는 엉뚱한 자의적 인 주장일 뿐이다.”15)

결국 신옥주 씨는 성경을 풀이할 때 비유풀이, 짜맞추기식, 자의적 억 지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그의 오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1. 이사야28:11의 다른 방언은 행2:4의 다른 방언과 일치하지 않는다. 전자는 앗시리아 방언이고 후자는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사도들이 말하게 된 다른 언어(방언)이다. 앗시리아 말은 사람의 방언이고, 성령의 다른 방언은 성령님께 속한 방언이다. 어떻게 앗시리아 방언과 성령의 말하게 하신 다른 방언이 같을 수 있단 말인가? 한글로 같은 말이라 이 곳 저곳에 있는 성경 말씀이 다 같은 뜻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기초가 되어 있지 않는 이단자들의 수법이다.

가령 누룩이라는 말이 같은 단어라도 바리새인들의 위선, 외식, 거짓 을 말할 때는 악한 누룩이 있고, 천국의 비밀, 천국복음의 확장과 영향 력(능력)을 말할 때 사용하는 좋은 누룩이 있다. 어찌 이 두 가지 누룩이 같은 누룩인가?

2. 말을 한 주체가 다르다. 앗시리아 방언은 하나님께서 앗시리아 사 람의 입을 통하여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이다. (실 제로 앗시리아인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말을 했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하게하신 말이다). 이사야28:11의 주체는 앗시리아 사 람들이고, 오순절에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을 말한 주체 는 주의 사도들이다.

3. 예언과 성취의 짝이 맞지 않는다. 사도행전2장의 사건은 요엘2:28 이하의 예언 성취이지 이사야28:11이 아니다. 요엘서에 예언된 말씀을 가지고 사도행전 2장을 해석했어야 하는데 이사야28:11을 가지고 온 것 은 짜맞추기, 자의적 억지 해석을 입증하기 위한 잘못된 방법이다.

4. 다른 방언을 듣게 된 대상이 다르다. 이사야28:11의 다른 방언(앗시 리아 말)은 에브라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타락한 정치, 종교 지도자들에게 들려진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2:4의 다른 방언은 세상 나라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하게 하신 말인데 15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동시에 들었다. 5. 구약 이사야28:11에 '다른 방언'이 나오고, 신약 사도행전2:4에 다 른 방언(개정개역성경에는 언어라고 번역)이 나오므로 앞 뒤 문맥을 무 시하고 보면 다른 방언=다른 방언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사야28:11 다 른 방언=사도행전2:4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성경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위와 같은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신옥주 씨의 성경풀이가 얼마나 황당 하고 거짓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통역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한국인이 영어를 알 아듣지 못할 때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말해주는 것을 통역이라고 한 다. 반대로 미국인이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할 때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 하여 말해주는 것을 통역이라고 한다. 고린도전서12장에 나오는 방언 통 역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풀이 하여 말하는 것을 가리켜 통역이라고 한다. 성경은 알아들을 수 있는 사 람에게 '해석되는 것'이지 '통역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성경말씀의 특수한 용어 외에는 쉽게 알 수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은 '통역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여 이해'한다. 신옥주 씨 는 출발점 자체가 잘못되었다. 통역해야하는 방언으로 기록되지 아니한 성경을 '통역해야 이해할 수 있는 방언'이라고 규정하고 출발한 것이 큰 오류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신옥주 씨가 말하는 성경이 방언이기 때문에, 방언을 통역해야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고린도전서12장에 나 타나는 방언은 기도나 찬양 중에 나타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써 의 방언이다. 그런데 읽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언어로 기록된 성경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라고 규정하고 그것을 풀이하는 것이 통역이라 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다.

고린도교회 내에서 문제가 되었던 방언은 반드시 통역이 있어야 허락 되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인 방언은 은사의 중요성에 있 어서 가장 나중의 순서에 기록되어 있다.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방언은 오히려 고린도 교회 가운데 어려운 문제를 초래하였다. 방언은 사랑으로 사용하지 아니하면 아무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고전13:1). 언젠가 방언 은 그친다고 말함으로 일시적인 것이라고 가르친다(고전13:8). 사도 바 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방언을 언급한 것은 고린도교회 가운데 나타난 방 언은 매우 중요한 은사가 아니라는 점을 나타내려고 언급한 것이다.16) 실제로 신옥주 씨는 성경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있다. 성경을 방언으 로 되었다고 함으로 누구나 읽고 알 수 있는 성경말씀을 아무도 알아들 을 수도 이해할 수 도 없는 것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기 자들에게 성경을 기록하게하신 것은 아무도 알 수 없도록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누구나 성경을 읽고 알도록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성경을 읽고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말씀을 통역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고 한정하여 말하는 것은 하나님 의 무한하신 은혜를 망령되게 하는 것이 되고 만다. 방언은 예언보다 열 등한 것이다(고전14;1-12). 방언은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사용하지 말 라고 한다(고전14:13-20). 방언은 신자의 유익이 아니라 불신자를 향한 표적이라고 가르친다(고전14:13-20). 통역은 초대 교회에서 방언이 나 타날 때 이 방언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했다. 방언 통역의 은 사란 방언의 언어들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능력으로 단순히 통역하는 것 을 의미한다(고전12:10,14:26-28). (월부어드, 성령, 235쪽) 영어를 다알아듣는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영어를 통역할 필요가 없다. 영어 통역 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지금은 성경 외의 어떤 계시도 존재하지 않으며 필요하지도 않은 시대이다. 지금은 기록된 성경을 우리말로 읽고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은 통역해야할 방언도 없고 방언통역의 필요도 없다.

정말 지금도 방언과 통역이 필요한가?

방언은사를 남용함으로 교회공동체에 질서를 깨뜨리고 성도들에게 유 익을 주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것이다. 방언은 구원의 증거나 성령체험의 유일한 증거가 아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이 더 경건하거나 더 믿음이 있 다고 말할 수 없다. 통역의 은사가 수반되지 않는 방언은 가치가 없다는 점에서 방언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성 경을 해석하고 풀이하여 모든 성도들이 알 수 있도록 가르치는 시대에는 더 이상 방언의 은사는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기도생활을 통하여 방언기도를 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것이다.17) 예언의 은사는 성 경계시가 기록되기까지만 필요했던 일시적인 은사였다면 당연히 예언보 다 순서가 뒤지는 방언의 은사도 일시적이고 그쳐야하는(고전13:8) 것이 아니겠는가? 요한계시록 22:21 이후에는 어떤 계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옥주 씨가 방언에 목숨을 걸고 물의를 일으키는 것 은 한국교회에 아무 유익이 없는 것이다.

각주

1) 신옥주, 교회안에 무당 ,(은혜로선교회 출판사, 2014). 표지 안쪽

2) 합신 이대위 조사연구 보고서, 신옥주(은혜로교회, 바울사관아카데미, 영적군사훈련

원)의 이단성, 2.

3) 개혁신보 684호(2014. 12. 6.) 6면 기사, “2014년 제99회 총회에서 신옥주씨에 대하여”

4) 신옥주,성경과 다른 거짓말, (은혜로선교회 출판사, 2012), 41.

5) 위의 책 83-84.

6) 합신 이대위 조사연구보고서,2쪽 ,신옥주,방언통역과 방언,(은혜로선교회,2012.),190쪽 '방언통역' 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를 보라.

7) 행2:4 다른 언어(방언)와 고전14:2 방언

행2:8 난 곳 방언(언어, dialect)은 각국의 국어로 고전14장의 방언이 아니다( 이상 근, 사도행전,(서울:총회교육부,1973),43).사도행전 2장과 고린도서의 방언은 서로 차이가 있다.(존 월부어드, 성령, 이동원역, 서울:생명의말씀사,238) 행2장의 방언 은 외국어의 발음으로써 이 언어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를 알아들 을 수 있었으나 고린도 전서의 방언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혀에서부터 유래한 이 상한 소리로 된 황홀한 방언으로써 통역의 은사를 지닌 사람들에 의해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월부어드, 앞의 책,238)

사도행전에 나타난 방언(2:4,10:46,19:6)은 고넬료(이방인)나 혹은 요한이 증언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된 신자들의 믿음을 확인시키기 위해 필요한 방언이었고, 초 대교회 유일한 구원의 증거나 영성의 증거는 아니었다.(월부어드, 앞의 책, 240) 고 린도전서 방언은 은사의 중요한 순서를 따라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방 언은 사랑가운데 사용되지 않으면 무익하고 무가치한 것이다. 이것은 일시적이고, 예언의 은사보다 열등한 것이다. 통역자 없이는 모임에서 사용해서 안 되는 것이 며 불신자를 향한 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예언의 은사와 같이 잘 조절되 어야 하고 교회 유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방언을 금하지는 말아야 하나 예언 하기를 사모해야 한다.(월부어드, 앞의 책, 240-241) 신옥주의 개인적인 방언을 이 방 신비주의자들이나 점장이들의 헛소리로 취급하는 입장 은 성경계시의 정확성 을 공격하는 시도가 됨으로 그의 사상을 거절하여야 한다.(월부어드, 앞의 책, 239) 8) 신옥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 (도서출판 세줄,2009), 10.

9) 신옥주,앞의 책, 17. 합신 이대위 조사연구 보고서, 1

10 ) 방언이 오순절에 시작되었고 그 이전에는 구약시대나 복음시대에는 하락되지 않 았던 은사(월부어드, 앞의 책,243) 전 성경을 방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 다. 왜냐하면 방언은 오순절에 시작되었고 그 이전 구약시대나 복음시대에는 나타나지 않았다.(월부어드, 앞의 책, 243) 실제로 롬12장의 일곱 가지 은사 열거(6-8)

에 방언의 언급이 없다는 점은 방언이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교훈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옥주 씨는 성경 전체를 방언이라는 틀 속에 가두어버렸다. 오직 방언이라 는 사상속에서 성경을 보고 이해하고 말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모든 만 물을 빨간 안경을 쓰고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세상은 빨간 색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방언(예를 들면 사28:11 방언은 앗시리아어임)은 구약 시대에 사용되었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일반적인 말이다.

사28:11-12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한 형벌로서 앗시리아 사람들이 와서 이스라 엘 백성들을 다스린다는 예언이다 (안토니 A 훼케마, 방언연구, 정정숙 역,(서울: 신망애출판사, 1972).69. 그러므로 사28:11의 다른 방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 아들을 수 없는 앗시리아 말이다.

11 ) 사도행전의 방언과 고린도교회의 방언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통역이 필요없고,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통역이 필요하다. 목적 에 있어서 사도행전의 방언은 성령임재의 확증이고,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교훈적 (개인, 교회) 이다.사도행전의 방언은 오순절의 확장이 필요했던 특별한 형편이었 고,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특별한 형편이 없었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불가항력적 일 시적 최조의 경험이었고,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방언하는 자가 조절할 수 있는 계 속적 은사였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언을 했 고,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모든 자가 방언을 말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도행전의 오순절 방언과 고린도전서의 후기 방언은 서로 다른 것으로 말한 다.(훼케마, 앞의 책, 105-106)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번역상 차이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개역 개정 성경에는 행 2;4에 다른 언어들, 고전12:10 각종 방언 , 방언들 통역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렇게 구분함은 혼돈을 피하기 위해 서로 다르다는 차이점을 드러낸 것이다. 그 러므로 개역성경에 나타나는 방언이라는 말이 다 같은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 다. 행2:4절의 방언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나타난 언어이고, 이 방언이 15 개국의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의 방언(언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들려진 것이다. 12 ) 장운철, 신옥주목사의 성경해석의 문제점 1,기독교포털뉴스)

13) 장운철, 앞의 글.

14 ) 신옥주 씨는 행2장에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을 다 유대인들이라고 말하며 그들이 들은 말을 히브리 방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세 종류 의 사람들로 구분이 된다. 1)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메소보다미야, 갑바도기아, 본 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 리비야, 그레데인, 아라비안 등 여러 지방에서 온 이방인인들, 2)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 3)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 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유대인들이 다 히브리 말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곳에 태어나서 현지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히브리말 을 알아들을 수 없을 수도 있다. 세 번째 부류의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은 개종 자들을 말한다. 그 개종자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의 '우리'란 그 언어(민족)에서 탄생한 것을 말한다.(렌스키, 사도행전 주석(상), 배 영철 역,(서울: 백합출판사, 1980), 56), 박윤선 박사도 사도행전 주석에서 '각기 소 속 국가의 말을 아는 자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4의 다른 방언은 히브리말이 아니라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께서 주신 특수한 말이며 이 방언을 통하여 15개국에서 온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큰 일(십자가와 부활사 건)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 있어서 신옥주는 랄라라 따따따 방언하는 자=강 포한 백성(사33:19)이며 새방언=헬라어를 말하고, 사28:11 다른 방언=헬라=전 세계 말이라고 한다. 행2:1의 소리는 -저 입 통해 전해지는 소리(자기 입을 통해 전해지는 소리)이며, 혀의 갈라짐은 구약을 예수님 이야기로 통역하는 것이라고 한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은 지금 내가(신옥주) 성령을 따라 말한다고 가르친다. 난곳 방언은 하늘나라 말이라고 주장한다.(신옥주 목사 동영상, 성경이 말하는 '새 방언' [00성령신학연구원 방언에 대한 성경적 고찰]이라는 동영상 설교 녹취록0 15) 장운철, 앞의 글.

16) 훼케마,앞의 책,109.Volorperostie magna facipsum iure dipisi. Na consed et lut alismolutet, quiscilit wisisisit pratio dolore ex eugue doluptatummy nonseni smodipit pratetum deliquis alit illan eu feu feugue te etum verci bla amcor sum zzriliquat, quatem exerostion henismolor suscin vel dit alit iusci blan euipisl exeraesent wis numsandignim dol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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