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기독교관을 비판함 (23)

도올의 교만은 끝이 없다. 그의 <도마복음서역주2> 의 p.303에는 “앞으로 새로운 종교혁명이 일어난다면 신약성서의 재편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제5 복음서로 도마복음서가 들어가고 요한계시록이 탈락되는 27서를 구상할 수도 있다. 인도불교가 선불교에로의 격의(格義, 교리를 비교하고 유추함, 필자 주) 과정을 거쳤다면 로마 중심의 서구기독교가 동방의 선(禪)기 독교회로 트랜스포메이션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필연이다. 이러한 생각이 나의 신념이요 사명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도올은 앞으로 종교혁명이 일어날 텐데 신약성경의 27서에서 요한계시록을 빼고 도마책을 성경에 끼워 넣자는 얘기다. 건방지고 교만한 멘탈이 내뿜는 怪聲 이다. 누구 맘대로 성경을 넣다 뺐다 한단 말인가! 이 사람이 뭐 좀 안답시고 뭘 잘 모르는 대중을 현혹시켜 보더니, 맛을 들인 모양이다. 요한계시록을 ‘미친 소리’라고 떠들어대더니 빼고 도마책을 넣겠다? 성경이 골목 엿장수 맘대로 되는 줄 아는가 보지?

성경은 두려우신 하나님의 말씀계시(神言啓示)다.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건드리면 심판받는다. 도올같이 망령된 말 하는 자가 있을 것이기에 성경 스스로가 선포하고 있다. 성경에서 한 글자라도 더 하거나 빼면 거룩한 성에 출입 금지 시키고 성경에 기록된 재앙을 내리 시겠다고 하셨다.(계22:18,19) 도올은 명심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할 기회를 얻기 바란다.


도올의 도마책 세일은 지겹도록 진부하고 타당성 제로이고 혹세무민의 프로파간다(선동)일 뿐이다. 계시록을 빼고 도마책을 넣는다? 뭐 종교혁명 어쩌구? 기독교가 동방의 禪기독교회로 둔갑해야 한다? 욕심도 크다만 이야말로 클리쉐(cliche, 진부한 말)가 아닌가. 도올은 성경 보고 클리쉐라 했는데, 이야말로 도올이 자기 영혼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성 경 계시를 떠나거나 비난하고 다니면 영혼이 진부한 세상 지식이나 오염된 정보들로 인해 크리쉐가 난무하는 정신일 수 있다. 큐 자료와 도마책 가지고 예수교란 걸 만들자고 하더니 기독교가 동방의 禪과 합종연횡까지 하란 말인가? 도올은 이런 헛소리를 언제까지 떠들고 다닐 것인가?


이러다가 북괴의 주체교와 믹스하고 김일성신교와 통합하자고 발광할까 걱정이다.


도올의 영혼은 그놈의 Q자료와 도마책에 올인 돼 있다. 이것들을 가지고 예수교를 만드느니 뭐 禪교와 합하느니 난리 부린다. 앞에서 누누이 말했지만, 그의 야심은 이 두 개로 66 정경을 대체한 예수교란 걸 만들고 싶어 안달인 것이다. 사도들이 전한 케리그마(복음 선포, 설교)는 모두 부풀리거나 사실이 아닌 것들을 교회 유지용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 에 신뢰할 수 없으니까 지성적이고 스마트한 큐와 도마책으로 기독교를 대신한 예수교란 걸 해 보고 싶다는게 도올의 생각이다.


이는 도올의 정신이 뭔가에 홀린 착란(錯亂) 증상일 것이다. 뭐에 홀렸나? 큐와 도마란 걸 매개로 한 사악한 영에 접신 돼 그럴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영적 세력들의 전쟁터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유일 구주되심을 훼방하고 안티 할 때는 제정신만으론 못한다. 도올로 하여금 그 많은 수고를 통해 중동을 현지답사하고 사계의 권위 학자들을 만나 토크 하는가 하면 여러 방송과 저술로 성경과 기독교를 비난하고 험담을 날리는 건 홀로 하는 게 아니다. 그런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주는 영이 있는 것이다.


성경 스가랴 3장에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는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고 있는 것을 여호와께서 스가랴에게 보여주셨다. 이때 여호수아의 옷은 더러워 있었고 여호와는 천사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고 죄악을 제거하사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머리에 정결한 관을 씌워 주시매 사탄이 물러가고 천사가 그를 지켰다.

이와 같이 사람의 영혼은 사탄의 공격에 노출된 상태다. 여호수아의 죄악이 사탄을 불러들였고 사탄은 여호수아의 죄악을 매개로 그를 대적한 것이다. 도올이 자신의 영혼에 접신된 어둠의 세력을 봐야 한다. 성경을 비난하고 구주 예수를 향한 참람한 주장과 행위들은 모두 사탄을 불러들이는 원천들이다. 여호수아처럼 영혼의 옷이 더러워지지 않았나 반성과 회개가 따라야 한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회개하고 죄악을 버려 아름다운 옷과 정결한 관을 얻은 것처럼 도올도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어떻게 신앙의 가정, 게다가 일생을 새벽기도 하신 어머님을 둔 자가 세상에 할 일이 따로 있지 성경 비난 구주 예수 폄훼, 교회를 향한 악담을 서슴지 않는단 말인가? 도올의 죄악은 단순한 교회 비난이나 평가 정도가 아니다. 기독교회의 신앙 핵심 도그마를 완전 파괴하고 성경 자체를 전면 부정케 하는 죄악 중에도 (철저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는 한) 용서받지 못할 큰 범죄를 쌓고 있다. 역사상 이단 중에도 이렇게 큰 이단은 아마 흔치 않았을 것이다.


도올은 하나님 부르시기 전에 제발 그놈의 큐와 도마책 판타지 집어 던져야 한다. 반복 언급했듯이 큐(Q)란 없는 것이다. 마가복음 속엔 없 고 마태와 누가에만 있는 공통 구절들을 모아서 이것이 단독으로 있었던 것처럼 고안해낸 가공물로서 학자들이 만든 가공 모조품인 것이다. 누가 그것을 본 적도 없고 세상에 드러난 일이 없는 것을 마치 있는 것인 마냥 선전할 뿐 아니라 심지어 큐 공동체가 있었다면서 복음서가 그것을 인용한 것처럼 떠들어대니 일종의 지적 사기행각인 것이다. 그걸 뭐 오리지날 성경인 것처럼 설치는 자들이야말로 뜬구름 잡으려 돌아다니는 격이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 날 것이다. 없는 것을 만들어 사람들 속이고 성경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죄가 가벼울 것인가?


그리고 도마책이란 것도 누차 말했듯이 결코 성경일 수 없는 특수 집단의 서책일 뿐이다. 성경에서 자기들의 기호에 맞는 것 뽑아다 그들 종교에 이용한 것뿐이다. 도올은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도마책 50년 대 설을 줄기차게 주장한다. 이는 도올의 객관성 결려와 외골수 기질을 보이는 건데 그 외골수 고집의 목적은 복음서들이 도마책의 영향을 받았거나 거기서 빌려온 자료들이란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그래야 현존하는 기독교 신앙의 체계들을 부숴버릴 수 있기 때문일 것 인데 그놈의 50년대 설을 누가 인정하겠나? 혼자 떠드는 허설(虛說)일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학계는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에 성립됐다는 게 연구가들의 다수가 지지하는 설이다. 하지만 훨씬 후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방면 연구가인 김기천 목사는 도마책이 인도종교와 혼합된 것이며 2세기에서 3세기에 작성된 것이고 아무리 초기로 올라간다고 해도 AD. 175년에서 180년 이상일 수 없으며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 영지주의가 한창 번창했을 때 기록된 밀교적 성격의 문서라고 했다. (당당뉴스, 2010.11.2.)


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3 (통나무, 2010)에의 표지에는

“도마복음은 현행 4 복음서와는 별도의 외경적 문헌이 아니다. 그것은 4 복음서의 뿌리이며 4 복음서에 내장되어 있는 진실이며 기독론, 종말론 이전의 예수교의 실상을 밝혀주는 빛이며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이다.”라고 선전하면서 세계 각처의 전문가란 학자들의 도올에 대한 칭송으로 도배하고 있다. 이 선전문에서 보듯이 도올은 도마책을 4 복음서의 뿌리로 보고 있다. 그걸 고집하려고 도마 50년대 설을 줄기차게 물고 늘어진다.


도올이 아무리 세계적 권위란 사람들 동원하면서 악을 써도 도마책이 4 복음서의 뿌리일 수 없다. 50년대 설 주창자는 도올을 비롯한 극소수이며 그 설이란 연구의 객관성이 담보되지 못한 일종의 이데올로기 수준 이다. 도올은 객관성 결핍의 나 홀로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자는 이데올로기를 휴대해선 신뢰 얻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연구의 객관성이 담보돼야 한다. 50년대 설이란 사실 도올의 기존 기독교에 대한 증오심이 그 배경일 것이다.


이놈의 기독교 신앙을 파괴해야겠는데 그러자니 복음서들이 큐와 도 마책이란 것에서 베껴온 거라 떠들어야 말이 되겠다 싶은 거다, 하지만 도올은 헛수고요 해롭기만 한 중노동을 사서하고 있다. 뭘 모르는 사람 들이야 외국의 학자들 이름도배하면서 떠들면 속겠지만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는 이런 행각이 어둠의 영과 함께 하는 작업이란 걸 쉽게 알아 버린다. 누굴 속이려 드는가? 방송에 나가 떠들고 책이랍시는 걸 마구 뿌 려대면 거기 넘어갈 줄 알지만, 아니다. 도올이 하나님 앞에 셀프 罪를 축적할 뿐이다.


하나님은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비방하는 것에 대해,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자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고전1:20) 하신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대적하면 그 지혜를 미련한 것으로 취급하신다는 말씀이다. 사람의 영혼이 미련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 하고 다닌다. 그때 그의 지혜는 이미 미련한 물건이 돼 버린 것이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 하셨다.


지혜가 어두워져 미련해지고 어리석어지면 무서운 것이 없어지고 하나 님의 신성한 계시와 구원 역사를 파괴하려는 사탄이 주는 교만과 영웅심 이 작동되게 마련이다.

도마책 50년대 설은 아무 근거도 없는 토크이며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의도로 불어대는 질 나쁜 선동일 뿐이다. 이것에서 4 복음이 영향받은 것처럼 떠들면서 사람들 현혹하고 교회 신앙 파괴시키는 행위는 마치 남 유다 왕 여호야김이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면도칼로 잘라 화롯불에 던져 불태웠던 케이스와 유사한 범죄행위다. (렘36:20-26) 그 여호야김 왕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체포되어 쇠사슬로 결박당하고 바벨론으로 잡혀가 바벨론 신당에 갇혔다. (역하36:5-8) 하나님의 말씀을 해하는 자의 미래가 평안할 수 없다는 교훈이다.


도올이 그 50년대 설을 주장하려면 이데올로기적 선동을 할 게 아니고 하다못해 고문서 연대 측정 기술상의 증거라도 내놔야 한다. 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마구 억지 주입시키지 말고! 아람어 권 예수 전승 연구 분야서 20세기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독일의 신약학자 예레미야스 (Joachim Jeremias)의 지도를 받은 딘 오버맨(Dean Overman이 쓴 A case for Divinity of Jesus에 의하면 “도마복음은 문학적 장르로 볼 때 복음이 아니며 영지주의 신화를 담고 있고 우리에게 예수에 관하여 독자적이고 역사적이며 믿을만한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고 있다. 도마복음은 4 정경 복음의 혼합서인 시리아 혼합 복음서로부터 파생된 2세기 후반의 저작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 복음(필자의 표현으론 도마책)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구체적 증거 하나 없이 2세기 것(도마책:필자 주))을 1 세기로 편입시키려고 순전히 비일관적이고 복합적 추측들에 의존하여 어 마어마하게 과장된 주장들을 내세운다”고 하였다. (<예수는 神人인가 > 곽인철 역, 종문화사, 2017, P.348) 딘 오버맨에 의하면 도마책은 결 국 2세기 후반에 기록된 영지주의 문서인 것인데 이 문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구체적 증거도 없이 추측에 의존해 1세기 것으로 만들려고 과장된 주장을 한다는 거다. 도올이 바로 이런 과장된 주장의 첨병인 것이다. 이런 신뢰 할 가치 없는 문서를 숭상하고 이를 초기문서라면서 복음서가 이에 영향받거나 베껴온 것으로 치부하려는 도올이야말로 불쌍한 영혼이다. 세상에 할 일이 많고 많거늘 하나님의 말씀을 난도질하는데 온 정 력을 쏟아붓다니!


위 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3>의 P.15에는 도올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연대기 표가 나온다.


“AD 30년 예수의 죽음 AD 50년경 도마복음 성립 70년경 마가복음 성립 100년경 요한복음 성립 367년 아타나시우스 27서 정경 체제 발표 외경 소장 금지. 그즈음 파코미우스 수도원 도서관에 있던 도마복음을 수도승들이 항아리에 담아 밀봉, 게벨 알 타리프에 매장. 1945년 12월 엘 카스르의 무함마드 알리와 그의 친구들이 사바크를 캐다가 발견. 1947 년 9월 프랑스 성서 고고학자 장 도레쓰 문서발견 사실을 알게 돼 세상에 알림. 1966년, 미국 신학자 제임스 로빈슨 발견 현장 방문. 1975년 가을, 제임스 로빈슨이 이 지역 탐색. 1977년, 제임스 로빈슨 주편 하에 나 그함마디 라이브러리 전체 영역 출판. 1983년 겨울, 도올 김용옥, [세계문학] 30호에 나그함마디 문서 발표. 2017년 4월 21일, 도올 김용옥, 나 그함마디 게벨 알 타리프 탐방. 2010년 4월, 도올 김용옥, [도마복음한 글역주] 전3권 출간”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도올의 이런 탐구열 자체는 귀한 것이다. 한국 기독교계 누가 이런 열정을 가지고 탐구한단 말인가? 이집 트까지 달려가 현장 확인하면서…. 이런 열정이야 누가 나무라랴만 그의 심적 동기와 지향점, 탐구 결과물이 고약하기 때문에 문제 삼는 것이다. 그이 심적 동기라면 기존 기독교 신앙체계에 대한 앙심이 메인일 것이다. 이런 고대 문서를 발견, 공표해 교회 신앙을 일망타진시켜보겠단 심보 아닐까? 이런 추론을 하는 건 그가 Q 자료와 도마책 팔이를 하면서 주장하는 것들이 한결같이 66 정경의 무력화와 기존 교회 신앙체계의 파괴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건전한 탐구욕이 아니다. 이 두 자료 가지고 기존 교회의 신앙을 뒤엎겠단 야심이 에너지로 발동된 것 아닐까? 하지만 도올의 수고는 헛것일 뿐만 아니라 본인과 세상에 해를 끼치는 공해 물질에 다름 아니다.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고 활용할 세력은 성경과 교회를 비난하고 해체하려는 세력, 즉 사탄의 일꾼들일 것이고 건강한 영혼들에겐 질 나쁜 아이템 자체다.


도올은 그 문서를 신기하게 여겨 거기에 구원과 진리의 길이 있는 것처 럼 흥분했겠지만 착각일 뿐이다. 구권과 진리는 고사하고 사람을 헷갈 리게 하고 멍 때리게 만들어 하나님께 가고 구원 얻는 길을 차단하는데 쓰여질 것이다. 고대의 항아리서 뭐가 나오기만 하면 흥분하고 달려드는 군상들 많지만, 결과는 허무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 도마책이란 게 과연 도올의 말대로 50년대 것이고 주의 말씀이며 진리이고 성령이 감동하신 것이라면 왜 교회가 정경으로 만들지 않았겠는가?

그런 잡서는 인류 역사에 흔해 빠졌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우리 주변의 신천지나 통일교 등의 허다한 이단들도 모두 자기 문서를 가지고 있다. 우리 당대엔 이게 무가치할 뿐 아니라 해로운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 들도 항아리에 담아 묻어 놓으면 후대에 사람들이 파내고 신기해하면서, “당시 종교권력자들의 탄압을 피해 숨겨 놓은 비밀의 계시이며 절대 진리”라며 흥분할 것이다. 도마책도 그런 것이다. 인류 역사에 소종파 비밀집단은 언제나 있었다. 이들은 세상과 격리돼 교주의 말을 맹신하고 타락한 세상에는 없는 유일한 계시요 오묘한 비밀이라면서 받은 자만 안다는 등 혹세무민한다.


어디 도마책뿐인가? 허다한 외경과 野史적 문헌들이 얼마나 많은가? 유대인의 탈무드만 하더라도 얼마나 유명한가, 하지만 성경은 아니다. 왜 그런가? 정경은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세상적 지식이나 지혜, 정보 가치가 있다고 성경 되는 것이 아니다. 아타나시우스를 비롯한 정경화 과정에 쓰임 받은 성도들이 단지 인간적 판단을 따라 작업했다고 여기면 큰 오산이다. 성경의 저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신 것을 믿지 못하는 자유주의 신학 부류나 도올식 안티 감정 가지고는 성경의 신비와 그 가치에 접근 못 한다. 도올식으로 무슨 항아리서 나오기만 하면 그것으로 교회 신앙 대체하려 하다간 마침내 탕자가 돼 쥐엄 열매로 연명하는 코스로 갈 것이다.(눅16)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역사를 기록한 계시는 정경인 66권으로 완성, 종결됐다. 이 정경은, “천지는 없 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24:35)
말씀하신 하신 그대로의 권위요,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 침이다. 도올이 함부로 정경의 권위를 해치고 큐나 도마책 따위 가지고 어떻게 해 보려는 작태는 영적 무지의 소치요 사탄의 일을 대행하는 일이다. 위 연대표에서 보듯이 도올은 도마책 50년대 설을 상단에 못 박아 놓고 있다. 도올처럼 성경에 안티 감정 가진 소수자 말고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50년대 설이야말로 도올의 억지공사요 성경 계시 파괴 공작의 정수다. 도올은 이 점에서 도대체 학자적 객관화의 능력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앞당겨 잡아도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 그러니까 4 복음서가 모두 완 성된 한참 후 영지주의와 각종 혼합적 성향의 특수 비밀집단이 자기들 기호에 이용하려고 복음서의 구절들을 가져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오히려 복음서보다 앞선 오리지날인 것처럼 설치고 있으니 일종의 지적 사기 행각에 다름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방면의 전문 연구가 오버맨(Overman)은 2세기 후반설을 주장하고 있을 정도인데 도올의 튀는 발상은 나 홀로 50년대 주의다. 이런 억지 그만하기 바란다. 그놈의 50년대 설 퍼뜨려 복음서가 마치 도마책에서 나온 것처럼 위장하다간 도올의 학자적 성실성이 의심 대상 돼 브랜드 가치마저 깨지고 말 것이다. 위의 연대표 중 도마책 50년 대 부분은 폐기돼야 한다. 만일 고집하려면 과학적 증빙 자료를 들이대야 한다 뭘 모르는 사람들 속이려 들지 말고! 글이란 한번 써넣어 버리면 그게 역사가 돼 버린다. 앞으로 사람들이 도올의 이 惡文을 보고 도마책 이 성경보다 일찍 기록된 오리지날이며 성경은 여기서 나온 것이라 인식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두고두고 어둠의 세력이 성경과 교회 신앙 파괴용으로 악용될 것이다.


교회의 녹을 먹고 사는 목회자와 특히 신학자들은 뭘 하고 있는 건가? 도올의 이런 惡說을 논박해야 할 것 아닌가? 논박은 고사하고 신학교의 석좌 교수를 시켜주지 않나 한국교회의 루터와 칼빈이라고 칭송까지 하는 얼빠진 인사들마저 있는 판국이니 한심하도다. 이들이야말로 거짓 선지자 부류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이단의 수괴급 주장을 일삼고 교회 신앙 파괴에 올인하는 자를 신학교 석좌 교수시키고 심지어 루터와 칼빈이라고 떠들어 대도 아무 말 없는 그 교단이란 어떤 곳일까! 이쯤 되면 기독교회임을 포기하겠단 뜻 아닐까! 위 도올의 책 <도마복음 한글 역주3>을 보도록 하자 앞부분에 탈고 소감이란 게 있다.(P.17) 그는 자신이 도마 책 해설 쓰는 일을 ‘광인의 난무(亂舞)’라 했다. 물론 무심코 나온 말이지 만 그의 영적 행각을 드러낸 말이 아닐까! ‘광인의 난무!’라 맞다. 정상적 그리스도인은 이런 글 질을 할 수 없다. 돈 줘도 안 한다. 광인이어야 가 능한 과업일 것이다. 광인은 뭔가에 미쳤다는 건데 사람이 무엇에 취하 고 미칠 땐 鬼神이나 惡靈이 침노할 수 있다. 그러면 狂亂氣가 나오고 초인적 활력도 생긴다. 도올이 자신의 심적 상태를 ‘광인의 난무’라고 한 건 맞는 측면이 있다. 성경 파괴, 신앙파괴를 도모하는 정신이 온전한 건강 상태인가 교회 신앙파괴의 칼춤 亂舞를 한 것이다.


도올은 그 광인이 돼 많은 양의 서책을 내놓았다. 일반 책이야 말할 게 없지만, 기독교와 성경을 시비, 농단하려던 그의 책들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하신 그대로일 것이다 뿐이랴 헛됨에 더하여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 큰 罪業의 축적이다. 교회사에서 많은 이단이 있었지만, 이렇게 성경을 조롱하고 난도질한 이단은 희귀할 것이다. 언제쯤 도올은 이 광인의 난무를 멈출 것인가?


그가 도마책을 접한 것은 수유리 한국신학대학에서라고 한다(P.18). 그리고는 1983년 중앙일보 후원으로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터키. 요르단을 다니며 관계 자료를 수집했다고 하면서 10대에 시작해 60대에 이르는(2010년 기준) 기나긴 여로를 도마책과 함께했다고 한다 (P.20, 21). 그러니까 2020년 기준 한다면 70여 년을 도마책과 함께했다는 얘긴데 그러니 건전 복음 신앙을 탈취당할 수밖에! 정경 66권 말씀 계시를 붙들고 있어야 할 영혼이 엄한 怪文을 붙들고 있었으니 사탄의 침노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도올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사역이 절정에 이르면 벌 하시게 돼 있다”라고 하면서 한국교회가 여러 가지 죄악이 집결된 최악 의 모습이라고 나무란다.(P.22) 그런데 도올은 한국교회만 나무랄 게 아니고 이 말을 자신에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도올의 성경과 기독교를 비난하고 엄한 怪文들로 대체하려 드는 작업이 도가 지나쳐 절정에 이르면 하나님의 간여나 징계가 올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남의 말 할 일이 아니다. 과유불급이다. 늦기 전 회개하고 이 怪文은 물론 이것들과 관련 된 자료들을 폐기하는 게 자신과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그는 자기 집 주변에 있는 교회 성도들이 교회서 나오다가 자기를 보면 피하고 수군거리고 인사를 건넬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며 “자신이 왜 이토록 회피와 기피의 대상이 되는 왕 마귀가 됐는가”라며 탄식한다.(P.22) 도올은 성도들의 이런 반응을 하늘나라 천사들이 도올을 보고 반응하는 것을 성도들이 대행한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성도들의 반응은 예사로운 게 아니다. 성경 히브리서 1장 14절에는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하셨다. 천사들이 천국에서 도올을 향해 걱정하는 것을 성도들이 반영했는지 누가 아는가? 그리고 자신을 “왕마귀”라고 했는데 순간 한 말일지언정 영 적 실상을 내보인 말일 수 있다. 하나님 말씀 파괴하고 괴문서로 대체하려는 거야말로 大魔鬼의 일이 아닌가!


도올은 “나를 열열한 기독교인에서 ‘동방의 초탈한 예지의 추구자’로 변모시킨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은 20대 초반에 접한 노자 <도덕경> 이란 책이다. 노자의 충격은 실로 컸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강렬한 충격을 나는 도마로부터 받았다”라고 해서 도덕경과 도마책을 읽으며 기독교 신앙을 포기했다고 말한다.(p.23) 여기서 도올은 자신을 ‘동방의 초 탈한 예지의 추구자’라 했다. 여기서 도올의 ‘초탈’이란 기독교 신앙을 버 린 정신적 방종 상태를 말한다고 봐 무리 없을 것이다. 보통 초탈이란 걸 말하는 경우들을 보면 정신의 ‘방랑’이나 ‘방종’ ‘무절제’ 상태를 대변하는 경우가 흔하다.


도올은 하나님을 떠나 교회 신앙을 버리고 방랑하는 영혼 된 것을 ‘초 탈’이란 말로 미화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유한자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초탈, 초인, 해탈 이런 것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듯 착각하 는 주체의 누추한 착각과 변명일 수 있다. 도올이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신앙을 버리고 도덕경과 도마책을 접하는 과정서 초탈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어둠의 영을 만났기에 오늘의 안티 기독 맨 된 것 아닐까? 그는 계속 말하기를, “도마는 기독교를 심장부로부터 서서히 해체 시킨다… 도마는 기독교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바울의 부활과 재림의 케리그마를 포기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초자연적 모든 사태를 내면화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위 같은 페이지) 하였다.


자기 입으로 도마책이 기독교를 해체시킨다고 한다. 도올은 기독교를 해체해버리고 싶었는데 도마책이란 좋은 동지요 무기를 만났다는 투다, 그리고 바울이 말한 부활과 재림의 케리그마를 포기해야 한다고 외친다. 도마책에 이런 거 없으니까 성경에서도 없애버리자는 거다, 그리고 모든 부활이니 재림이니 하는 신화적 표현들은 모두 내면을 정화시키는 도구 정도로 쓰고 버리자는 얘기다. 도올의 발상이야말로 돈키호테에 다름 아니다. 누구 맘대로 성경의 도그마를 변경? 하늘의 천사도 못 한다. 도올 과 같은 막무가내 돈키호테 부류들이 있기 때문에 성경은 이를 경고 한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 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 어다”(갈1:7, 8. 도올이 누구이기에 바울의 케리그마를 포기하라고 하는가? 혹시 그럴 권세를 마귀로부터 받았나? 그래서 자기를 셀프 왕 마귀라고 하는가? 바울은 하나님의 영감 받은 계시의 수여자이다. 어디다 대고 함부로 감히 바울을 향해 망발하는가? 성경 건드리면 위 갈라디아서 말씀대로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다.


그리고 내면화란 걸 부르짖는데, 허튼소리 그치기 바란다. 인간 내면은 가시떨기 돌밭, 길가와 같은 곳이다.(눅8:9-14) 평생 애써도 스스로 내면을 정화시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 없다. 내면을 정화시켜 인간을 구원할 것처럼 하는 세상 종교들은 불가능한 것을 강요하는 교훈이며 가인의 제사와 같이 하나님께 열납 될 수 없는 체계들이다. 도올은 자기도 못 하는 걸 선전하고 있다. 행위로 완전해질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化肉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도올은 이런 말하면서 “많은 자들이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깔깔대고 웃을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은 훗날 그들은 외칠 것이다. ‘당신이야말로 선지자였소!’” 할 것이라 하였다.(위 같은 페이지) 이로 보아서 도올은 아마 자신의 이런 행위가 미친놈 비슷한 액션인 걸 순간 느끼는 모양이다. 그도 양심이 있고 어릴 때 들었던 신앙 스토리가 심중에 남아 있겠기에 “이거 미친 짓 아닐까” 순간이나마 스쳤던 걸까? 도올이 기대한 것과 달 리 훗날 “당신이야말로 선지자였소”하고 평가할 사람들이라면 좌파 군상들이나 무신론자, 정신적 방랑아들이나 그럴까 구원받은 성도들 입에 선 이단의 온상이요 착각의 왕이었다고 평가받기 십상일 것이다. 아니 벌써 그런 평가가 중론 아닐까?


그는 계속해서 이런저런 리버럴 계통의 신학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 이며 자기과시를 하는 중, 특히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에게 각별한 감 사를 표하고 있다. “내가 한국기독교의 루터와 깔뱅 역할을 톡톡히 해내 리라고 믿으시면서 항상 정신적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김경재 교수님” 이라고 드높인다.(P.24)


전술한 대로 김경재 교수는 도올 칭송 1호 인사라 할 만큼 친 도올적이다. 소위 도올을 “한국교회의 루터와 칼빈”이라며 떠벌린 그의 멘트는 무책임을 넘어 배교 이데올로기의 후원자 격이다. 도올의 어떤 부분이 루터와 칼빈의 100분의 1이라도 닮았단 말인가! 성경 무시하고 Q와도 마책 가지고 예수교 만들자는 게 그렇게 좋은 소식인가 교회의 녹을 먹는 신학자란 사람들이 교회 신앙에 배신 때리고 불신 대중에 영합해 이런 헛소리를 해대니 도올이 기고만장해 날뛰는 거 아닌가 말이다.


신학자 중 똑 부러진 인간 하나만 있었어도 도올의 잡소리를 벌써 내리쳤을 것이다. 그놈의 외국 유학은 왜 했으며 고대어 공부는 뭐 하려 했는가? 박사학위는 뭐 하러 걸치고 있나? 이리가 양을 물고 있어도 구경 만하고 히죽대는가 하면 도리어 이리를 칭송하는 선생들이야말로 밥만 축내는 삯꾼들일 것이다. 김경재 교수는 도올의 어느 부분이 한국교회의 루터와 칼빈 역할 하는지 본지를 통해 필자와 토론하기를 제안한다.


2007년 5월 11일 감신대에서 열린 신학대토론회가 있었는데, 김광식 교수 김경재 교수 이정배 교수 유동식 교수 도올 김용옥 등이 참석해 토론했고 2008년 5월 27일에는 같은 감신대에서 2차 토론회를 열었다는데, 여기엔 도올 이정배 김명수 채수일 등의 교수들이 참석했고 1차는 ‘한국교회와 성서’, 2차는 ‘큐복음서와 한국교회’였으며, 두 번의 토론회가 모두 3시간씩 진행됐고 천여 명의 관중이 좌석을 뜨지 않고 토론에 집중했다고 한다.(P.24) 도올이 이 두 번의 토론회를 자랑하고 있는 점으로 봐 두 번의 모임 모두 도올이 가지고 놀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런 큐나 도마책을 주제로 한 모임은 없어야 했었고 만일 어쩔 수 없이 했었다면, 도올이를 혼 내키고 “정신 차려라. 이놈! 얻다 대고 정경을 훼파하고 이단 잡서나 가공의 문서를 가지고 교회 신앙을 해치려 드느냐 사탄의 흉계로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과 기독교계에 엎드려 회개하고 사 과해라!” 호통쳐야 맞다. 그런데 모인 구성원들로 봐 도올을 책망하기는 커녕,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지 않았을까 싶다. 신학자란 사람들이 이따위 짓 하고 있으니까 이단 사설이 날뛰고 도올 같은 위험 인사가 휘 젓고 다니는 것 아닌가! 이런 토론회인지 하는 걸 통해 도올에게 날개를 달아주었으니 한국교회를 향해 온갖 험담과 욕지거리 마저 해대는 것이 다. 그놈의 토론회에 참석한 신학맨들이 큐와 도마책이 무엇이며 도올이 발설하는 惡談들이 뭘 노리는 물건인지 숙고나 해 보고 모임에 얼굴 내 밀었었나?


도올의 가벼운 입을 또 보자. 그는 안식일에 대해 “천지를 창조한 야훼가 너무 피곤했기에 쉰 것이다” 했다.(P.35) 도올이 천지창조 때가 본 것처럼 떠들어대는 이런 표현은 그의 경망됨을 입증한다. 하나님이 인간이거나 피조물인가 피곤하시게? 아마도 도올이 자기 인생이 피곤한 것을 이렇게 투영하는 모양이다. 도올의 영혼이 피곤한 거야 이해된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계시와 구원 역사를 훼방하고 안티하며 다니는 영혼에 어찌 평강이 있겠는가! 불안한 내면을 도마책 큐, 노자, 氣철 학 등으로 때우려 하겠지만 아니 된다. 이런 악행이 누적될수록 도올의 영혼은 깊게 탄식하는 자 되게 마련일 것이다.


성경 떠나 창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면 영적 손해 온다. 욥도 자신의 괴로움을 탄식하며 고난의 원인을 알려고 했으나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시되,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 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책망하셨다.(욥38:4, 5) 도올이 뭘 안다고 하나님이 “너무 피곤해 쉬셨다”는 등 교만한 말을 해 대는가 창조시 하나님 주변서 구경이라도 했었나?


그는 또 “원래 예수의 오리지날한 사유의 한켠에 영지주의적 측면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P.38) “도마복음의 소박한 원형적 사유가 요한복음의 신화적 로고스 기독론으로 드라마적 각색을 더 하여간 발전 경로를 우리는 쉽게 추론할 수 있다. … 도마의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떠벌리지 않는다”라 했다.(P.39) 이는 도올이 줄기차게 요한복음을 영지주의적 문서로 보고 요한복음이 도마책 안에 있는 영지주의적 요소에서 영향받은 것이라고 여기는 논리의 연속이다.


요한복음이 영지주의적이란 소리는 불트만(Bultmann)이나 도올 같 은 정경의 완전성을 불신하는 자들의 상투 수법이다. 요한복음이 위에서 지적했듯이 영지주의적이란 망발도 아무 설득력이 없는, 불신자에 가까운 신학도나 안티 기독맨들의 전형적 헛소리일 뿐 근거 제시가 안 되든 오류추론의 전형이다.


도마책이란 게 정체불명의 어떤 비밀집단에서 자기들의 기호에 맞는 것만 복음서에서 가져다 만든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성 자 되심을 말할 리가 없다. 도올은 도마책 자체의 오리지날리티를 정직하게 탐색하고 늦기 전 일찍 이것을 팽개쳐야 한다. 이단 문서들을 가지고 장난치자면 도마책 말고도 우리 주변에만도 수두룩하지 않은가? 왜 하필 이단 책 도마서와 가공의 공상물에 불과한 Q 가지고 난리인가!


그는 또 “요한복음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를 철저히 플라톤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도마복음은 헬레니즘 세계에 있어서 헬라클레이토스 의 건강한 사유와 홀리스틱한 측면을(holistic aspect) 保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여(P.43) 요한복음이 고대 헬라의 로고스론을 Platon식으로 각색해 사용하는 데 비해 도마책은 그렇지 않고 헬라클레 이토스의 좋은 점을 간직했다는 말이다. 도올이나 자유주의 신학도들이 항시 즐기는 상투 수법은 이와 같이 어떤 계시 용어가 있으면 이게 어디서 따온 것이고 어떤 영향 하에 만들어졌다는 등 계속 떠들어서 성경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마귀의 제일 소원은 성경 못 믿게 하는 것이고 예수 우리의 唯一 구세 주 되심을 거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게 마귀의 행동원칙이다. Logos란 용어가 고대 헬라에서 사용됐었으나 이 용어를 그리스도의 神性을 나 타내고 있다. “이 Logos는 곧 하나님이 시니라” (요1:1)하셨다. 그랬으면 이 로고스야말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계시 하기 위한 용어로 쓰여진 것일 뿐인데 무슨 헬라클레이토스에다가 플라 톤까지 읊어대면서 뭘 모르는 대중을 미혹하려 하나? 고대에 그런 용어가 사용되고 있던 걸 하나님께서 계시 용어로 사용하셨나보다 하면 될 것을 교묘한 논리로 현혹하고 있다.


그렇게 둘러대자면 성경의 모든 글과 문자, 용어들이 모두 세상에 있는 것들이고 오랫동안 사람들이 사용해 오던 언어들인데 이 모두를 근거를 추적하면서 이 말은 어디서 온 거고 무슨 영향 하에 쓰였다면서 언어 유희로 성경 깨겠다는 건가?
도올은 그럼 안 된다. 자기가 성경 못 믿겠으면 혼자 그러든 말든 이지 만 방송과 책을 남발하면서 성경 불신과 교회 신앙 깨기에 전념하는 그 열정은 어디서 온 것이며 이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 필요한 일인가 罪를 범하는 건 아닌가를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회개하는 기회가 속히 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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