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선교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이다. (마태복음28장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까지 온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증거 하여야 할 것이다. 복음증거를 통해 세게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효율적인 선교대회는 필요한 것이고, 또 선교대회를 통하여 선교정보와 선교 비젼을 나누어가므로 서로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선교의 동원과 효율성과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에서도 로잔대회에 관심이 아주 많다.

왜냐하면 많은 복음주의 단체와 개인이 1974년 제1차 로잔대회에서 발표한 로잔언약을 그들의 신앙고백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로잔대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일 것이다. 로잔대회를 보고 어떤 한 측면만을 강조하거나, 또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덜 강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평가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상의 교회는 완전한 교회가 없듯이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성경을 근본으로 하고 있지만 또한 완전하지 못하므로 늘 공과는 있는 것이다. 로잔대회는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복음주의진영 지도자들이 모인 로잔 세계복음화대회(Lausanne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로잔대회를 바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1910년에 열린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Edinburgh World Missionary Conference)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제3차 로잔대회가 2010년에 열리는 이유는 1910년 에든버러선교사대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제4차 로잔대회가 2024년 9월에 한국에서 열리게 되어 있다.

열어가는 글

1.에딘버러 선교대회(1910년 영국 에딘버러)

                                                                ▴1910년 열린 에든버러선교사대회모습(자료)
                                                                ▴1910년 열린 에든버러선교사대회모습(자료)

이 시대 기독교 선교의 정점은 1910년에 영국 에딘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the World Missionary Conference)이었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1910년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세계선교사대회가 열림으로 모트의 선교비전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참석한 대의원도 1,200명이 등록하여 성황리에 개최가 되었고, 선교회나 선교단체도 무려 160개나 참석하여 큰 호응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에딘버러 선교대회를 말하려고 하면 모트를 빼고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에딘버러 선교대회가 열리기까지 모트의 영향력이 대단하게 미쳤기 때문에 그렇다.

근대선교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려지고 있는 인도선교사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가 1792년 침례교선교회(Baptist Missionary Society, BMS)를 결성하고 인도로 파송 받은 이후 교단 선교회나 선교단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기독교 선교의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기간 동안 선교사들의 과다한 경쟁으로 말미암아 중복되어지고 있는 사역은 오히려 화근이 되어져서 선교현장에 큰 어려움들을 겪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 때 감리교 평신도였던 존 모트(John R. Mott, 1865-1955)는 젊은 시절부터 학생자원선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SVM)과 기독교청년회(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YMCA)의 지도자로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세계여행을 두 번씩이나 하게 되었다. 이것이 모트로 하여금 세계선교의 흐름과 방향에 눈을 뜨게 하였을 뿐 아니라 선교는 연합과 일치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존 모트는 에딘버러 선교사대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280만 km를 여행을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 거리는 지구를 68바퀴를 돌은 거리이다. 모트는 모든 교회와 선교단체가 더 이상 서로 경쟁하지 않고 연합할 것을 당부하기 위해서 인도, 중국, 일본, 브라질, 남아공, 호주, 뉴질랜드 등지를 방문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은 두 번씩이나 방문을 하였다. 1907년 1월부터 4월까지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서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부터 일어났던 평양 대부흥 운동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모트의 열심으로 세계복음화를 위한 연합과 일치의 정신은 마침내 1910년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세계선교사대회가 열리게 되어 이제 모트의 비전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 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도 1,200명이 등록을 하여 성황리에 개최되었을 뿐 아니라 선교회나 선교단체도 무려 160개나 참석하므로 큰 호응을 얻었다. 무엇보다도 이 대회에 한국대표가 15명이나 참석하여 초기한국교회의 선교를 상세하게 보고하기도 하였다.

에딘버러 선교대회는 1910년 세계선교사대회를 미국 해외선교회가 주축이 되어서 개최하기로 하고 첫 모임을 1906년 11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Glasgow)에서 가졌다. 1907년 6월 12일에 37개의 선교단체가 동참할 것을 표시하였고, 이때 실행위원회가 구성되어져서 두 명을 먼저 임명을 하였는데, 스코틀랜드 연합자유교회의 해외선교회 사무총장인 재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과 스코틀랜드교회 해외선교회 사무총장인 완(A. B. Wann)이 선정되었다. 이후 모임에서 실행위원회가 좀 더 구체적으로 보강되어 에딘버러 선교사대회를 착실하게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실행위원회에서는 선교지에서 실제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토론하는 모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대회의 목적은 비기독교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한정을 짓고 세 가지 의미가 충족되기를 원하였다. ① 교회로 하여금 모든 나라에 복음전하는 일에 헌신토록 눈을 뜨게 하는 것 ② 이러한 과업에 크리스천들이 연합의 정신으로 참여하는 것 ③ 선교사대회가 교회의 삶을 풍요롭게 하며 새롭게 하나님을 발견토록 하는 것이었다.

에딘버러 선교사대회는 윌리암 케리가 더 이상 선교지에서 경쟁하지 말고 함께 연합해야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초교파적인 에큐메니칼 선교대회를 1810년 남아공 케이프타운(Cape Town)에서 열기로 제의한지 꼭 100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경쟁’ 선교를 뛰어넘어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세계최초의 선교사대회가 1910년 에딘버러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1910년 에딘버러 선교사대회의 주제는 “이 세대 안에 세계복음화”(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이다.

“이 세대 안에 세계복음화”는 전 천년주의 종말론 신앙을 그대로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전 천년주의 종말론이란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마태복음24장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말씀을 실현하는데 앞장서게 하였고, 당시에 제국주의 선교도 한 몫을 감당하였다라고 볼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에딘버러 선교사대회의 의장인 모트는 학생자원선교운동 출신으로 전 천년주의 신앙의 핵심이었고, 그의 정신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빠르게 확산되어져 갔던 것이다. 그리고 1910년 에딘버러 선교사대회에 참여한 1,200명의 대의원 가운데 선교단체 출신 선교사들은 대부분이 비기독교국가에서 사역하는 사역자들이었다.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 후 세계 선교의 흐름은 당시의 신학적 흐름에 있던 에큐메니컬운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결과 좁은 의미의 해외 선교에서 넓은 의미의 선교로 선교의 흐름이 바뀌게 된다. 이것은 당시 등장한 개방적 신학과 SVM(Student Volunteer Movement)의 영향이기도 한 것이다. 1930년대 SVM의 관심은 해외 선교로부터 사회 흐름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으로 옮겨 가게 된다.

그 결과 SVM은 젊은이 해외 선교 동원 운동으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어 버리고,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그 사역이 종결되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의 해외 선교 동원 운동으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해 버리고 말아 버렸던 것이다. 그 이후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 사역이 종결되어져 버린다.

이러한 흐름으로 말미암아 에딘버러 선교운동은 국제선교사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IMC)와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로 발전하면서, 에큐메니컬운동으로 만들어 가는 통로가 되어 버렸다. 그 후 1961년 WCC 뉴델리 회의에서 IMC와 WCC의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세속화와 인간화 논쟁이 에큐메니컬 진영의 주요 신학적 의제를 형성하게 되어 버린다.

1952년 IMC 윌링겐 회의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말이 등장하게 되어 지는데,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선교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을 하면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개념이 왜곡되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로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이 현장을 떠나가게 되고, 기독교 선교의 확장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혹은 퇴보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1960년 복음주의 진영에서 WCC 운동이 온전한 복음전파에 대한 강조보다는 교회의 일치와 사회적 관심에 더 집중하고 1910년 에딘버러 대회의 본질인 가치와 정신을 보존하지 못한다고 평가를 하게 된다.

그리고 1960년대를 거치면서 칼 헨리, 빌리 그레이엄 등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회복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당시 복음주의진영의 문제의식은 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복음의 확장이 중지되었는가 하는 질문들이 있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열린 복음주의자들 중심의 첫 세계적인 모임이 1966년의 베를린세계복음화대회 이었다. 이 대회에서 복음주의자들은 세계 복음화의 회복이 일어나야 한다고 의견을 나누고 같이 공감함으로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해, 1910년 전 세계 기독교 선교사가 모였던 에딘버러 선교사대회처럼 세계 복음화를 위한 복음주의자들의 모임을 제안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1974년에 스위스 로잔에서 세계 복음화를 위한 대회가 열리게 되고, 일회적 성격으로 모였던 그 대회가 로잔대회로 발전하게 되면서 복음주의 진영의 구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제1차 로잔대회(1974년 스위스 로잔)

▴1차 로잔대회 모습 스위스 로잔(자료)
                             ▴1차 로잔대회 모습 스위스 로잔(자료)

제1차 로잔 세계복음화대회(Lausanne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는 1974년 7월 16일-25일 스위스의 로잔에서 열리게 된다. “온 땅이여, 그의 음성을 들으라!”(Let the Earth Hear His Voice!)는 주제로 전 세계 150여 국가의 135개 기독교 교단에서 2,700여 명이 모임을 갖게 되었다. 1차 로잔 대회는 자유주의진영의 선교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으로 선교현장을 떠나는 선교사로 인하여 선교에 위기를 맞이하여 선교회복의 뜻을 같이한 복음주의 진영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에딘버러 선교대회처럼 세계복음화의 회복을 위하여 모이게 된 것이다.

1차 로잔대회 주 강사로 나선 존 스토트 성공회 신부는 복음전도와 사회활동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복음주의적 입장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정의를 한다. 사회적인 관심과 사회적인 협력은 중요한 것이고 복음은 전도하는 것과 무관한 일은 아니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복음이고 교회의 주된 사명은 복음전도라고 분명하게 선언을 하였다. 또한 빌리 그레이엄도 로잔 대회가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선교에 헌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하고, 결코 WCC와 자유주의 신학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져서는 아니 된다고 강조를 하였다.

빌리 그레이엄은 로잔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복음주의 선교신학을 추구하고, 영감 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충실하고, 복음전도와 구원과 회심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수용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를 하였다. 1차 로잔 대회의 마지막 날, 존 스토트에 의해서 초안되어진 15개 조항으로 구성된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이 발표되어 지게 되었고, 빌리 그레이엄과 1차 로잔대회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서명하였다. <로잔 언약>은 복음주의 관점의 선교의 방향을 분명하게 수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로잔언약은 머리말 (Introduction)을 시작으로 총 7개 언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1. 하나님의 목적 (The Purpose of God) 2. 성경의 권위와 능력 (The Authority and Power of the Bible) 3.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 (The Uniqueness and Universality of Christ)  4. 전도의 본질 (The Nature of Evangelism) 5.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Christian social responsibility) 6. 교회와 전도 (The church and evangelism) 7. 전도를 위한 협력 (Cooperation in Evangelism)

제1차 로잔대회의 공헌 한 바를 들자면 첫째, 세계복음화를 이루어 가는데 우선적인 것은 복음전도 이기는 하지만,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는 복음의 총체적 측면(Whole Gospel)을 회복한 일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미전도 종족 선교 전략’을 제시 하였다는 것에 있다. ‘로잔언약’은 그야말로 복음주의 교회에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로잔언약을 통하여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제2차 로잔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복음주의 진영은 그야말로 신학과 선교 전략 발전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2차 로잔대회(1989년 필리핀 마닐라)

                                                                          ▴2차 로잔대회 모습 필리핀 마닐라(자료)
                                                                          ▴2차 로잔대회 모습 필리핀 마닐라(자료)

2차 로잔 대회는 1989년 7월 10-20일까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주를 선포하자: 모든 교회 구성원들이 모든 복음을 가지고 모든 나라들에게”(Proclaim Christ until He Comes: Calling the Whole Church to take the Whole Gospel to the Whole World)라는 주제로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2차 로잔대회는 약 170개국의 3,000여 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참여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2차 로잔대회를 시작으로 복음주의 선교의 신앙을 위협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신사도개혁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을 주장하는 피터와그너(Peter Wagner, 1930-2016)를 2차 로잔대회에 주 강사로 세웠다는 것이다. 피터 와그너는 스위스 로잔에서 열렸던 1차 로잔대회에도 그의 스승이신 플러신학교 선교학 교수인 도날드 맥가브란 과 찰스 크래프트, 아더 글래서 등과 함께 참석을 하였었다. 그러나 2차 로잔대회에서는 주 강사로서 잘못된 영적 사상을 전파 하므로 2차 로잔대회에 참여한 자들에게 잘못된 영적 영향을 끼치므로 바른 신앙과 선교현장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하고 말았다.

피터와그너(Peter Wagner)의 신학을 살펴보면 ‘70년대의 신학과 80년대 말의 신학은 다르다’ 라고 볼 수 있다. 70년대의 신학은 전통적인 신학을 지향 하고 있었지만, 와그너는 80년대 초에 빈야드운동의 선구자인 존 윔버(John Wimber, 1934~1997)를 만난 이후 그의 신학은 변질되어 버리고 말았다. 와그너는 ‘방언, 예언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고 있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탄을 결박하고 대적하는 능력을 받은 특별한 중보기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라고 주장을 하였다. 또한 ‘중보 기도자들의 기도로 교회의 부흥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하는 비성경적인 사상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피터 와그너는 플러신학교의 교수이므로 그의 영향력은 많은 교회들에게 끼치게 되었고, 많은 교회들이 중보기도라는 개념을 수용을 하였을 뿐 아니라 중보기도 팀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피터 와그너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는 중보기도의 은사, 귀신을 쫓는 은사를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서 기독교 복음 사역 안에 추가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결국 성경 66권의 완성과 그리스도의 몸 된 이 땅에 교회 설립 이후 사라져버린 사도의 은사가 다시 교회에 주어졌다는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차 로잔 대회에서 미전도 종족 선교를 강조하는 ‘마닐라 선언’이 작성되어지게 되었다. 마닐라 선언에는 물론 불건전하고 위험스러운 내용은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잘못된 영성인 신사도 개혁운동을 주장하고 있는 피터 와그너의 사이비 선교전략이 미전도 종족 선교의 방법으로 접목되었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피터 와그너는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차 로잔 대회에 자신이 강사로 참여하여 강의한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과정이 시작된 것은 흔히 제2차 로잔회의라고 부르는 역사적인 세계복음화 회의에서이었다.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위원회는 전 세계에서 4,500명의 지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1989년에 마닐라에서 열리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 적어도 다섯 명의 연사들이 다른 참석자들 대부분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서 강의를 하였다. 그 주제는 ‘영토 귀신들’(territorial spirits)이었다. 나도 그 다섯 명의 연사들 중의 하나이었다. 우리는 교회가 바울이 말하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싸움’(엡 6:12)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그러한 ‘공중전’이 전 세계의 미전도 종족들에게 나아가 사역하는 전도자들, 교회 개척자들, 그리고 목사들이 수행할 지상전의 길을 닦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꼈다” (피터 와그너 2008).

피터 와그너가 2차 로잔대회에서 미전도 종족들을 지배하고 있는 ‘영토 귀신’ 개념을 강의한 것이다. 당시 와그너의 신학에 대한 비판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특히 와그너가 복음주의 신학과 선교를 대표하는 2차 로잔 대회의 강사로 참여하여 이런 잘못된 강의를 하였으므로 이 강의의 파급력은 선교 현장에 엄청나고 크게 나타났던 것이다. 이후 수많은 선교단체들과 현장 사역자들이 2차 로잔 운동을 통해 불건전한 운동을 접하고 잘못된 영성으로 무장을 하여 정당성을 확보하므로 복음의 현장을 더럽히게 되어 버렸다. 피터 와그너의 기록을 보게 되면, 마닐라에서 2차 로잔 대회가 열렸을 당시 그가 얼마나 귀신과 친밀했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내가 마닐라에 있는 동안 주께서 나의 귀에 들리는 음성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지역의 영들을 대적하는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기 바란다’ (Wagner 1997).

2차 로잔 대회 마닐라 선언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피터 와그너라는 영적으로 잘못 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주강사로 세웠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전도 종족을 지배하고 있는 영토귀신 개념을 주장하게 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때부터 와그너의 성령에 대한 모든 거짓 이론들이 더 공신력을 얻게 되어서 전 세계 선교현장으로 전파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불행하게도 2차 로잔 대회 이후 로잔 운동은 잘못된 사상에 젖어 있는 자들에게 정당성을 얻게 하고 활동하게 만드는 마당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2차 로잔 대회의 ‘마닐라 선언문’은 21개 항목의 신앙고백으로 구성되어져있고, ‘전교회’(Whole Church), ‘온전한 복음’(Whole Gospel), ‘온 세상’(Whole World)에 대한 선언문을 담고 있다. 그러나 마닐라 선언문의 내용 속에는 2차 로잔대회의 주강사인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개혁운동의 잘못 된 내용은 들어가 있지는 않다. 1차 로잔 대회의 주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그를 선포하라’와 2차 로잔 대회의 주제 ‘온 교회가 온 세상에 온전한 복음을 전하라는 부름’의 정신에 기초하여 성공회 신부인 존 스토트가 마닐라 선언의 초안을 작성하였다. 먼저 로잔 운동의 21개 항목의 신앙고백(affirmations)이 나열되었고, 후반부에는 복음주의 선교의 토대가 되는 12개 주제에 대한 항목들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마닐라선언. 로잔운동).

3차 로잔대회(2010년 남아공 케이프타운)

                                                                      ▴3차 로잔대회 모습 남아공 케이프타운(자료)
                                                                      ▴3차 로잔대회 모습 남아공 케이프타운(자료)

3차 로잔 대회는 2010년 10월 16-25일 동안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케 하시며”(고후 5:19)라는 주제로 198개국의 4,200명 정도의 복음주의자들이 모였다. ‘복음’, ‘세상’, ‘교회’라는 큰 주제와 ‘진리’, ‘화목’, ‘타종교’, ‘우선순위’, ‘통합’, ‘파트너십’ 등의 소주제를 다루었던 3차 로잔 대회는 1910년에 열렸던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집회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3차 로잔 대회는 복음주의 선교와 신앙을 위협하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2차 로잔 대회가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주의를 복음주의 속으로 유입시키는 통로가 되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면, 3차 로잔 대회는 중교다원주의를 복음주의 속으로 초대하는 마당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제3차 로잔 대회 현장에는 WEA(World Evangelical Allance)의 총재 제프 터니클리프도 참석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3차 로잔 대회를 WEA와 로잔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하였기 때문에 그렇다. 터니클리프 WEA 총재는 2014년 WEA 세계총회를 서울에서 열 수 있도록 초대해 준 한국 교회에 감사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로잔 대회에 대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선 이번 대회는 전 세계 기독교 가족들의 성대한 축제가 되고 있다.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교인들이 모인 역사적인 대회이다. 이렇게 많은 교인들이 함께 모여서 연구하고, 찬양하고, 우리가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어떠한 방향으로 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중대한 기회이다. 나의 소망은 이 대회가 전 세계 교회들과 단체들이 힘을 받는 계기가 되어서, 여기서 이끌어 낼 결단들을 헌신으로 옮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3차 로잔 대회가 끝난 후 로마교회, WCC, 정교회 지도자들이 1,000여명 정도 참여하였다고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 “제3차 로잔대회는 198개국 4천여 복음주의 교단과 선교단체, 신학교와 대학 등에서 공식 대표들이 참석한 외에도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 WCC 등에서도 1천여 명이 초청되어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대회로 치루게 되어졌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기는 하다.

이 의장은 이는 “멤버십이 있는 조직이나 기구가 아닌 로잔언약에 동의하고 세계복음화에 헌신하는 이들의 국제 공동체”로서의 로잔운동의 특성이 가능케 한 일이었음을 설명하였다” (김브라이언 2010).

로잔위원회는 1,2차 대회와 마찬가지로 3차 로잔 대회에서도 ‘케이프타운 서약’을 만들어 내놓았다. 케이프타운 서약의 내용은 1차 로잔 대회의 ‘로잔 언약’과 2차 로잔 대회의 ‘마닐라 선언’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의 역사적 연속선상에 서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프타운 서약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1부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성경적 확신들을 다루고 있으며, 2부는 그에 따른 그리스도인들의 행동 요령으로 구성되어 있다 (케이프타운 서약 신앙고백과 행동-로잔운동). 그러나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로잔 대회의 공식 문건에는 교회와 신앙과 선교에 해를 끼치는 내용들이 들어 있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였으며 어떤 사람들이 강의를 하였는가에 대해서는 기록에 남기지를 않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3차 로잔 대회가 WEA와 공동으로 개최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WEA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실상 부정하는 로마교회와 협력하고 있다는 것과 WCC와도 분명한 선을 긋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을 하여야 할 것이다.

제4차 로잔대회(2024년 대한민국 서울)

                                                        ▴4차 로잔대회 기자회견 후 참석자들(데일리 굿 뉴스자료)
                                                        ▴4차 로잔대회 기자회견 후 참석자들(데일리 굿 뉴스자료)

제4차 로잔대회는 2024년 9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약 3천~5천 명의 글로벌 선교 사역자가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다고 발표를 하였다. 한국, 일본을 비롯하여 아시아 지역 로잔이 협력하여 공동 개최하며, 조직위원장은 국제로잔 마이클 오 총재와 한국로잔 이재훈 의장(온누리교회 담임목사)이 공동으로 맡게 된다. 조직위원회 측은 이번 대회가 특별히 세계 선교의 가속화를 위해 ‘함께 듣고, 모이고, 행동할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다.

마이클 오 총재는 2024 서울대회를 개최하는 세 가지 이유에 대해 “첫째는 겸손한 경청을 통하여 세계의 가장 큰 필요와 기회를 파악을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실패한 길을 회개하기 위해서이며, 둘째는 세계 선교를 가속하는 로잔운동의 사명을 위해 함께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셋째는 복음의 능력과 소망을 우리의 말과 삶으로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마이클 오 총재는 2024년 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을 동원하는 두 가지 이유로 “첫째는 시대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가 극심해질 때, 이것을 다루는 시기가 이때인 것 같을 때이다. 둘째는 내부적으로 기독교를 위협하는 요소가 생길 때, 이 시대 유일한 신학적 질문들을 다루게 되고 세계교회 가운데 관계적 갈등이 있기 때문에 이 모임을 갖는다”라고 언급하였다.

이어서 “제4차 로잔대회에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를 하였다. 마이클 오 총재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또 서로의 뜻을 존중하여 경청해야 한다”면서 “서구교회가 전 세계 교회가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고, 아시아 교회가 아프리카 교회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겸손한 마음으로 경청해야 한다. 그리고 위에세대가 무엇을 하는지 젊은 세대가 들어야 하고, 반대로 위에세대가 젊은 세대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경청할 필요가 있다. 경청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지만 효과적이다”고 말하였다.

한국로잔 이재훈 의장은 “4차 로잔대회가 한국에서 열리지만, 아시아 교회들이 함께 호스팅하는 대회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라며 “아시아 교회가 모든 과정을 함께 할 것이고, 그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복음적인 운동이 되리라 생각 한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로잔운동의 중요한 특징은 교파와 계층, 세대를 뛰어넘어 다양한 영역에 있는 분들이 하나 되는 운동으로, 한국교회와 선교단체 지도자들, 젊은이들, 신학생들, 비즈니스 세계에 있는 분 등 많은 성도가 하나 되어 이 대회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전하였다.

나가는 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온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야 한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되 성경에 근거한 바른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로잔 운동이 성경적 선교를 위해 성경적 선교를 타락시키는 심각한 단체들과 교류하고 협력한다면, 로잔 운동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더군다나 2차 로잔 대회를 통하여 전 세계 교회의 선교지도자들에게 신사도개혁운동 사상을 전파하였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로잔 운동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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