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기독교관을 비판함(25)

도올은 요즘 새 책을 냈는데 이름이 <나는 예수입니다>이고 부제로 -도올의 예수전-이라고 돼 있다(통나무, 2020) 이 책은 도올이 자기를 예수라 생각하는 1인칭 상념으로 써 댄 책인데 제목부터가 나쁜 발상이다 도올이 무슨 재주로 2천 년 전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빌2:6)의 화육(化肉,incarnation) 사건을 1인칭으로 떠들어 댄단 말인가

각종 죄악 된 지식으로 오염된 영혼이 무슨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나대는지 가소로운 일이다  ‘나는 예수입니다’랍시며 풀어대는 스토리들이 한결같이 쓸데라곤  없는 교회신앙 파괴용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惡書를 칭송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한국신학대학 계열의 사람들이다
그 학교의 신학대학원장 김주한이란 사람은 이 책의 겉 표지에

“이 책을 통하여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바른 신앙의 좌표를 찾을 수 있기를 간구 합니다 ”

이렇게 뇌까렸다 이 사람들이 교회신앙(성경신앙)이 있는 사람들인지 이 책을 한번 읽기나 하고 이따위 칭송 하는지 의문이다 이 책의 어디에서 바른 신앙 좌표를 찾으란 말인가 하나같이 신앙 파괴하는 걸 가지고!

바른 신앙은 고사하고 있는 신앙마저 탈취당해 무신론이나 성경 의심 병 환자로 만들기에 딱! 좋은 물건이건만 무슨 염치로 이런 무책임한 소리를 해대는지 모를 일이다 이단이나 이단적 학설들이 활개 치며 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해체시키는 배경에는 교계의 책임 있는 목회자와 신학 도들이 이를 논박하고 교회신앙을 방어하지 않아서인 것이다 일반 성도들이야 뭘 알아서 이런 악설들을 쳐낼 수 있을 것인가

성도들이 헌금해서 목회자 신학교 선생들 모두 먹여 살리는 건 성도들이 못하는 일 해달라는 거 아닌가 이단이 나타나면 싸워주고 거짓신학이 나와 헷갈리게 하면 똑 부러지게 그 본질을 밝혀 일망타진 시켜달라고 헌금하고 높여주곤 하는 거 아닌가 도올의 글 어디에 바른 신앙의 좌표가 있단 말인가 또 이 책의 겉표지엔 죤 캅(John Boswell Cobb)이란 사람도 한마디 하고 있다

이 사람은 미국의 클레어몬트 신학대학 명예교수인 사람이고 미국 학술원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의 정회원인 사람이다 이 사람이 한 말은 이렇다

“ 도올 김용옥 교수의 성서 담론은 보편적 성격의 것이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에 의해 논의 되어야 한다.”  

자! 존 캅 선생의 말을 좀 까 보자  도올 김용옥의 성서담론이 과연 보편적 성격의 것인가 무슨 놈의  보편성이 있단 말인가 이는 정 반대의 멘트 아닌가 보편은 고사하고 반성경적 傀聲(괴성)들의 집합일 뿐이다 뭘 알고나 말해야지!  도올주의에 기독교 보편 가치란 제로 포인트다 도리어 기독교의 보편가치를 파괴하는 雜談(random talking)들의 집합이다

보편기독교를 까부수고 뭐 새로운 예수교란 걸 만들자는 사람에게 무슨 보편이 있단 말인가 이 사람에게 보편이란 말 적용하려면 66정경 모두 사라지고 그를 믿던 크리스쳔들 모두 없어진 후 Q란 물건과 도마책이란 이단문서가 보편된 세상이 나와야 보편이 되는 것이다 지금 도올의 주장은 보편이긴 고사하고  이단부류의 괴설(怪說) 선전가에 불과한 물건이다 캅 선생은 신앙이 있는 사람인지,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칭송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에 의해 논의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분은 착각을 하고 있다 도올에 관해 토크하면 할수록 헷갈리고 성경정통복음은 온데 간 데 없어지고 만다. 교회 갈 생각 뺏아 버리고 성경을 덮거나 멀리하게 만든다. 아니! 집어 던지게 할지 모른다. 도올이 구약은 우리나라 성황당 같은 얘기라고 하며 복음서는 모두 부풀려져서 믿을 게 없다며 모두 버리고 큐란 것과 도마책이나 읽어야 한다는 인물인데 이사람 얘기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퍼뜨려라?

이 책, 즉 <나는 예수입니다> 란 물건도 그런 범주를 하나도 넘지 않는 모놀로그(monologue,독백)에 불과한 잡서인데 이런 걸 읽어라? 퍼뜨려라? 식자우환(ignorance is bliss)이라더니 식자들이랍시고 끼리끼리 해를 끼친다. 죤 캅 선생도 주예수를 구원의 주로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도올의 무책임 악담을 이렇게 추천해선 안 될 일이다 

도올이 저렇게 마음 놓고 교회신앙 퐈괴를 자행하는  건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도올의 위험성을 간과했거나 도올주의에 대한 무지, 또는 그 해악을 알면서도 같이 놀아나는 작태들 때문인 측면 크다 한국신학대학에서 도올에게 무슨 석좌교수를 시켜준다거나 “한국교회의 루터와 칼빈”이라고 부추기는 행위(김경재 한신대 명예 교수) 등 어리석은 작태들이 도올로 하여금 방방 뜨게 만드는 것이다

<인물한국인>이란 사이트 1919년 4월 8일 자에는 UCLA대학 한국학 교수인 옥성득 교수의 <옥성득 교수의 한국 기독교 역사>란 글이 있다 여기에 2007년 3월 23일 도올과 조용기 목사의 대담얘기가 나온다.  여의도 CCMM빌딩 조용기 목사 사무실에서 만나 서로를 부추겨줬다는 내용이다. 조용기 목사가 도올의 <요한복음 강해>와 <기독교성서의 이해>를 읽고 감탄한 듯,

“도올 선생은 천재다 어떻게 공부해 이런 저서를 다 썼느냐”했고 도올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다 읽고 왔다 기독교 진리가 명확하게 요약돼 감명 받았다”고 한다
조용기 목사가 제대로 된 성경신앙이라면 도올을 이렇게 부추길 게 아니고 엄히 책망했어야 했다 그 책들에 써 갈겨놓은 것들을 보고 ‘천재’라는 등 그랬다면 책을 제대로 안 읽고 읽은 척 했거나 그 속에 반성경적 콘텐츠를 찾아내지 못했던지 아님 그 내용에 공감했던지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앞선 글에서 그 책들의 내용을 비판했던 대로 대부분 교회신앙에서 용납될 수 없는 썰 들인데 어떻게 대형교회 목회자가 이런 책을 칭송하는 건가

이런 목회자들의 허술한 의식을 틈타 도올이 설치고 있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의 위치라면 도올을 만날 필요도 없거니와 어쩌다 만났어도 엄하게 꾸짖어 회개를 시켜야 할 것 아닌가 어떻게 성경신앙 파괴하고 다니는 사람을 천재니 뭐니 하면서 부추긴단 말인가 이 만남에 대해 옥성득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나는 그가(조용기 목사)불교에 심취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2004년 동국대 강연에서 오랫동안 마음에 있었던 말을 했다고 본다 나는 그가 종교다원주의자가 아닌 종교혼합주의자라고 본다 흔히 그의 삼박자 구원과 기복신앙을 무교에서 온 것이라고 하지만 민간불교에서 온 것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도올과 조용기 목사가 한국교회에 미친 악영향은 막상막하일 것이다 2007년 그들이 만나 서로를 높힌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시원한 평이다

다시 그의 <나는 예수입니다>를 보자!   이 책 p.8에는 “ 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그곳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만삭의 여인이 걸어서 그런 여행을 했을리 없다  당시 로마제국 전체에 호구 조사령 내린 적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호구조사는 세금 걷기 위한 것인데 왜 사는 데서 하는데 그랬겠냐면서 논리에 맞지 않는 얘기라고 한다.  그러면서 동방박사 얘기도 불가능한 거고 크리스마스도  중동의 신화에서 위인이 탄생 때 동지 전후로 잡는 습관 때문에 생긴 거라고 한다.(p.9,10)

도올은 어떻든지 주예수의 신성을 제거하고 민중운동가 정도의 크라스로 만들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도올의 말은 악의적 추측에 불과한 무근거 허설이고 성경은 정확하다 당시 가이사 아우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했고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갔다 호적은 세금 때문만 하는 거 아니다 행정 군사 외교 국방 사회질서 등 다목적이다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일 때 처음 한 것이고 요셉도 다윗족속이므로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향하여 가던 중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눅2:1-7)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하신 일이니 미가서 5장 2절의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근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하심을 이루신 일이다 도올은 무슨 착각을 하길래 그리스도의 베들레헴 탄생을 부인하려 드는가 1인칭 망 상념으로 2천년 전을 여행했더니 그런 헛것이  보이던가? 도올은 틀리고 성경은 일점일획 사실 그대로다 도올의 목적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성경을 틀리다고 강변해 마귀운동을 도우려는 심보일 것이다  도올이 그런다고 누가 성경 버리고 도올의 말을 신뢰할까 혹 도올 책 추천서를 쓴 한신대 신대원장이란 사람과 죤 캅이란 명사님이나 믿을까 제정신 든 그리스도인이라면   속으로 도올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성경을 대적하고 다니는 불쌍한 영혼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도올은 앞서 많이 언급했듯이  예수세미나를 주도한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에 심취해있는 모양이다 도올의 예수 그리고 복음서를 언급할 때면 온통 크로산의 말을 옮겨 놓은 듯 느끼게 한다 크로산은 매우 급진적인 신학자로 알려지는데 원래 가톨릭 사제로 일하다가 결혼하려고 사제직을 버린 사람이며 온통 복음서와 예수 연구에 몰두했노라고 알려진 사람이다 아일랜드 출신이며 시카코 드폴대학교의 명예교수로 있다

그는 1985년에 예수세미나(Jesus Semina) 란 것을 만들었는데 처음엔 30여명으로 출발한 성서 비판(biblical criticism) 모임이었다가 200여명으로 불어났고 그 모임의 멤버들은 자유주의 성향의 하버드 클레몬트 벤더빌트 대학의 사람들로 이뤄졌다 그러니까 미국 서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 구룹이라고 할 수 있는, 즉  노골적 안티성경 성향인사들로 구성된 모임인 것이다

이 사람들의 연구방식이랍시며 내 놓은 건 그 유명한 ‘색 갈 구슬치기’인데 예로 어떤 성경 구절이 있다면 이 구절이 직접 예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때 색깔이 있는 구슬로 비밀투표를 하여 정한다 “거의 틀림없이 예수의 말씀이다”라면 빨간 구슬, “아마도 그럴 것이다”는 핑크색,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는 회색구슬, “그럴 리가 없다”는 검은색 구슬로 의사 표시하는 식이었다.(<예수는 누구인가> 한국기독교연구소,1998,p.20,21)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자유주의 학도들이 모여서 색깔 구슬치기  하는 게 무슨 진리가치가 있겠는가는 물으나 마나일 것이다 자유주의는 이성주의고 인본주의여서 계시 중심적 사고가 아니며 도리어 계시를 해치고 망가뜨리는 인간의 교만이다 

신앙행위는 계시에 복종적 행위다 거기엔 인간 이성의 유한성과 죄악성을 전제한 피조물로서의 자세다 하지만 자유주의는 계시보다 인간 이성이 주인노릇 하기 때문에 결과는 불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안티심리가 깔려 있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신뢰하지 못하고 그 잘난 무슨 자료  연구들을 통해 구슬치기로 판단하는 등 행위는 가소로운 일이다 이를 주도한 크로산은 도올에게 심대한 영향을 준 듯하다

이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연구에 관한 작업은 “ Who is Jesus?" __Answer to your Questions about the Historical Jesus--( 예수는 누구인가-역사적 예수에 관한 질문에 답함)에 압축돼 있다 여기서 그는 통상적으로 기독교회가 믿는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도그마를 대부분 파괴하고 있다 신학은 신앙의 학이고 신앙을 위한 학인데 크로산에겐  이런 콘텐츠가 거의 결핍수준이다 그의 예수관은 예수야말로 가난한 농민운동가요 밥상공동체주의요 평등가치에 몰입했던 문맹의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를 ”문맹이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예수가 이사야서를 인용해 주위를 놀라게 한 것은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의 창작이다“라고 한다 (위 크로싼의 책 p. 68)    

이렇게 크로싼은  복음서의 예수관련 보도의 대부분을 창작으로 여긴다. 종말에는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난다. 신학자란 이름으로 구주예수의 인성과 신성에 위해를 가하는 작태들이 연속해 일어난다.  <열심당원 :나사렛 예수의 삶과 시대>란 책을 써낸 레자 아슬란(Reza Aslan)이란 자도 주예수 당시 대부분이의 사람들이 문맹이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도 문맹이라고 주장해 책을 많이 팔아먹었다 크로산이나 이사람 할 것 없이 성경을 신뢰하지 않고 도리어 찢거나 해치려는 자들이기에 말한들 무엇하리만 이들은 구주예수의 신적 지성과 지혜에 대하여 성경 마 13:54 막6:2  눅 2:40,52 고전 1:30 골 2:3 계 5:12를 정독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회개하고 정신 차리기 바란다.

도올은 이런 크로싼 부류에게 배웠을 망령된 지식 가지고 구주예수의 베들레헴 탄생을 의심하는 따위의 망발 버리기 바란다. 모든 성경의 보도를 창작이라느니 의도적 편집, 신화적 프레임 만들기로 보려는 영혼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지혜가 있을 것인가 그럴 리는 고사하고 마귀의 지식이 편만할 것이다 사탄마귀의 큰 목적은 주예수를 하나님과 구주로 믿지 못하게 하고 그 대속하시는 은혜를 불신케 하며 성경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무슨 유명 대학의 교수니 평생 성경을 연구했느니 항아리서 꺼낸 고대 문서들  연구 했다느니 하는 인사들 말에 현혹됨 없어야 한다 그런 전문가들치고 말씀 앞에 떨고 겸손히 기도하며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는 사람 찾기 매우 어렵다 필자의 주관에 불과하지만 그런 성경 전문가 본 적이 없다 거의 신앙 탈취 당한 채 지식 판매상으로 전전하는 경우 태반이다 그런 자들이 자기만 탁락하면 그만이지만 별놈의 책을 다 써내 불신 조장하고 인기 누리며 마귀 좋은 일 한다 크로싼 도올 모두 성경 파괴세력일지언정 교회 신앙에 전혀 도움 안 된다 도리어 있는 신앙 탈취해가는 위험세력들이다

도올이 의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크로싼의 예수 연구는 불경하기 짝이 없고 일일이 대꾸할 필요도 없는 막무가내다 그는 복음서의 주요 부분들을 창작이고 의미부여를 위한 디자인인양 떠들어대면서 심지어 속죄(贖罪)교리를 하나님의 부도덕이라며 “그것은 하늘에서 일어난 아동학대(child abuse)다“ 라고 뇌까린다(위, 크로싼의 책,p.190) 얼마나 사악한 말인가 성경은 66권 전부가 구속사(求贖史)를 메인으로 하고 있다 이 큰 은혜를 저주하다 시피 하는 학자군상들이 성한 영혼들인가 그들이 그리스도를 논하고 성경을 언급할 자격이 있는 자들인가 성경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것이요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들을 위한 계시이다  무신앙 학자 군상들의 인기 팔이  용일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것이다

크로싼의 책을 일일이 평하기조차 짜증나는 일이지만 그의 지적 폭행이 너무 심해서 그냥 스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로 주예수의 부활에 대해서도 “초대교회의 지도력 싸움 때문에 생긴 문학적 창작들”이라고 한다(위의 책,P.199)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잡담을 연구랍시고 떠들어대는 신학자란 군상들이야말로 요주의 인간들 아닌가 자기가 무슨 초 시공간  축지법이라도 써서 당시에 가보기라도 했나? 말도 안 되는 소릴 책이랍시고 써대고 있으며 그런 걸 읽고 뭘 좀  아는 척 하는 군상들 허다한 실정이다 

서울의 어떤 목사란 자는 크로싼의 책을 읽고 해대는 말이겠지 주예수께서 로마군인에 의해 폭행당한 마리아가 낳은 아들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이런 망발의 원산지가 크로싼인 것이다 크로싼은  2세기말경에 나타나 기독교회를 악평했던 켈수스(Celsus)라는 자가 말했던 걸 인용해 주예수께서 로마군인 판테라(Panthera)에 의해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설을  은근히 옹호한다 (위,크로싼의 책p.49)  서울의 모 목사도 아마 이 크로싼의 책을 보고 떠든 모양이다

이 켈수스는 자료가 충분치 않아 잘 알려진 게 없지만 당시 교부 오리게네스가 논박한 글이 있다 <켈수스를 논박함 Contra Celsum>인데 이 자료에는
켈수스가

“ 예수는 작은 유대인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어머니는 가난한 수공업자이다 이 여자는 간음을 했기 때문에 목수였던 남편으로부터 이혼당한 사람이다 그녀는 결혼 생활 없이 불안전하게 방황하다가 몰래 예수를 나았다 예수는 가난해서 이집트로 이주했고 거기서 일일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이집트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마술하는 사람들과 같이 일했다 그러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그리고 그 마술 능력을 자랑하며 보여주었고 그것 때문에 자기를 스스로 공연히 하나님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라고 한다는 것을 오리게네스(Origenes)가  전하고 있다( <켈수스를 논박함>오리게네스,새물결출판사,임걸 역,2005 p.63)

이렇게 켈수스는 2세기말에 나타나 기독교를 맹비난 하면서 만들어낸 억지주장을 했고 이를 근거해 크로싼이 로마군인 사생아 설을 유포했으며  이를 읽은 한국의 목사란 사람조차 그 로마 군인설을 떠드는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로마군인의 이름을 판데라(Pandera)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켈수스가 유대인들에게 들었다면서 퍼뜨린 로마군인 이름이었다고 (오리게네스는) 전한다(위의책,p.69)

이는 시대마다 나타나 교회와 성경교리를 해치거나 공격하는 이단의 부류인데 자유주의 신학도들이 이런 개인의 의도적 창작으로 퍼뜨려 놓은 것을 맹목 인용한다 자유주의 신학도들의 특징은 성경의 온전한 증언을 창작이다 편집됐다 공동체 정신의 반영이다 상징적이며 실존적 자료다 고대 근동서 빌려온 것이다 라는 등 공격 일변도다 그 대신 외경이나 야사에 불과한 것 또는 이단들이나 교회를 공격했던 자료들은 애지중지 하면서 의미부여 한다. 그건 그들의 영혼에 신앙이 바닥나  성령의 감화가 없는 상태다보니 이런 결과들을 낳는 현상이다.  

오리게네스 교부는  켈수스를 심하게 나무란다 켈수스의 인격과 주장을 신뢰 할 수 없다면서 그가 에피쿠로스학파(Epikureanism) 경향이 있으며 기독교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켈수스가 그리스도교에 대해 듣고 배운 것은 처음부터 그리스도교를 공격하고 비난할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켈수스는 논리적으로 글을 전개하는 철학자처럼 자기 글을 전개하지 못하고 단지 천하고 비철학적인 증오에 사로잡혀 쓰고 있다 그는 자기 책을 읽는 ,그리스도교를 접해보지 못한 독자들을 부추겨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켈수스의 말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극단적인 사람들로 여겨 이 세상에서 완전히 몰살시켜야 할 존재로 생각 한다 ” (위의 책,p.251)            

결국 켈수스는 기독교를 증오한 나머지 유대인들에게 들었다는 말로 로마군인 설을 퍼뜨렸지만 실은 그가 만들어 낸 얘기일 수 있다 이단이나 악령에 이끌리면 거짓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다 이런 켈수스의 말을 근거로 해 로마군인설을 은연중 유포하는 크로싼이나 크로싼이 써낸 것들에 의해 그 로마군인설을 입에 올리고 다니는 목사란 사람의 영혼이야말로 불쌍한 처지일 것이다

  도올이야말로 한국의 크로싼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친 크로싼 (pro-Crossan)일 것이다 도올이 지금이라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회개하고  새벽기도 다니시던 어머님께 효도하려면 크로싼 부류의 이 경박 스터디에서 떠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한한 인간 이성이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주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흠을 내거나 유일한 구속주 되심에 훼방을 놓으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지게 마련이고 하나님과 역사, 교회 앞에서 책임질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 크로싼이 발설해 놓은 것은 그의 <예수는 누구인가>에만 해도 열거하기 피곤하리만치 많다 이를 어찌 일일이 챙길 것인가 복음서의 모든 교리적 메시지를 통째 거부하고 구주예수가  무슨 밥상공동체 만들고 농민 데리고 평등세상 만들려고 했다는 천박한 그의 논리가 그져 측은지심 대상일 뿐이다
다시 도올의 책 <나는 예수입니다>로 가보자                

도올의 나쁜 습관 중 하나는 어떻든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신약과 분리시켜 성경 계시의 통전성을 깨려는 악습이다 그의 책 도처에 나타나기 때문에 앞선 글에서도 자주 언급했으나 여기서도 그 버릇이 튀어 나온다. 야훼는 민족신(tribal god)이며 질투의 신이고 전쟁의 신이라면서 흔한 부족신의 하나라고  떠든다(p.12)

왜 도올은 처처에서 이렇게 구약에 대한 증오를 날리는 걸까  한마디로 성경계시의 통전성을 깨서 교회 신앙을 망가뜨리려는 앙심을 품은  도올 영혼의 특수성에 기인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구약을 믿는 것은  우리나라의 성황당을 믿는 것과 다름없다”고 떠든다(한겨레신문 2007년 2월 16일 자)
하지만 이런 도올의 착각에 기인한 발상은 가련하고 측은한 영혼의 신음소리일 뿐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성삼위 한분 하나님으로 한 분이시되 3인격이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천지창조에서도 엘로힘(Elohim)하나님께서 “우리”라는 복수로 나온다

“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하심으로 천지와 인간창조를 성삼위 하나님께서 회의하셔서 이루셨음을 계시하셨다 성부 성자 성령은 본질과 영광이 동등하신 한분 하나님이시니 그 영광을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절대자이시다 모든 만물이 성삼위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간다(롬11:36)

도올이 구약을 난타하는 건 교부시대의 마르키온(Marcion)이단을 닮은 행위다 마르키온은 구약을 폐기해야 한다면서 여호와를 화를 잘 내는 난폭한 신이며 실수가 잦고 후회하고 은혜를 모르는 신이며 공의만을 추구한 신이라고 했다(<이단과 정통>Harold Brown,그리심,2001,p.108)

도올이 구약을 험담하고 다니면 마르키온이단에 역사했던 나쁜 영에 접신됐다는 인상을 받게 마련일 것이다 해아래 새것은 없다 에덴에서부터 활동했던 사탄마귀는 끊임없이 이단을 제조해낸다  신구약 66 정경은 성삼위 한분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며 구원 역사의 기록이다 도올의 성경 찢기 공작은 이단들의 족보에 들어갈 작업일 뿐이고 아무 생산성 없는 피곤 유발 체다.

도올은 그 일인칭 망 상념을 통해 교회마져 부정하고 있다 그의 <나는 예수입니다>에는 "나는 살아있을 동안에 교회를 만든 적이 없습니다 교회라는 조직은 나의 사전에  한 줄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해서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무관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p.32) 이는 아마 도올의 마음 안에 자리 잡은 교회에 대한 앙심의 발로일 것이다 왜 도올은 교회를 이렇게 싫어하고 그 근거마저 없애고 싶어 하는가 심지어 청년들에게 교회 가지 말라면서 북한산에서 놀다오는 게 더 낫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교회엘 다녔으나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이 교회를 향한 원망일 것이다 구원받고 성령이 내주하시면  이런 행위들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도올의 이런  심리와는 달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그리스도의 몸이며(엡1:23)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셨다 도올은 다음의 성경을 읽고 주님이 교회를 친히 세우시고 양육 파송하신 걸 깨닫기 바란다. 마16;18, 마 10:1-5, 고전10:4 ,눅10:1,2 행1:15...  

도올은 성경과 교회를 비난하고 교회 신앙을 해체시키는 연구나 인물을 만나면 그를 과대평가 한다 그런 그의 액션을 통해 그의 심보가 교회  해체요 성경 비난이며 그리스도께서  구속주요 하나님 되심을 제거하려는 데 전력질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을  “20세기 서구의 가장 위대한 성서신학자”라고 추겨 세운다(p.35)  그러면서 불트만이 행한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 Entmythologisierung)에 후한 점수를 준다.  도올의 불트만에 대한 이런 칭송은 불트만의 그 ‘비신화화’가  성경을 불신케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한낱 신화로 여기게 한 나쁜 작업인 것을 간과하고 있다 

불트만은 신약성경 연구에  양식비평(Form Criticism)을 적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방법은 자유주의적 성경관 ,즉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성경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제하는 인본주의인 것이다  이 양식비평은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을 사실대로 믿지 않는다 초기교회가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수집해 그것들을 자신들이 구성한 틀에 맞춰서 배열했다고 주장 한다 그는 예수님이 존재하셨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분의 본질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불트만은  자신의 스승인 바이스( Johannes Weiss)의 철저 종말론(Consistent escatology, 예수님이 종말의 임박을 잘못 선포 하셨다는 견해)을 따랐다

그는 1914년에 <신약 성경과 신화>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는 성경은 대부분 신화에 해당한다는 전제로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사건들은 물론 그이야기의 사건들을 진술한 세계관도 신화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행기를 타고 아프면 약을 먹는 시대에 어떻게 천사와 귀신들을 믿을 수 있냐고 말했다
그의 신학 작업은 ‘비신화화’(demythelogizing)란 말로 대표할 수 있는데 이는 성경을 신화 없이 전하자는 것이고 신화 없이 복음을 나타내자는 것으로 계몽주의 영향을 받은 이성주의적 실증주의 욕망에서 나온 교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불트만에 의하면 전통적인 속죄(贖罪)의 교리도 신화에 불과한 것이 된다(<서양 철학과 신학의 역사>생명의 말씀사,2018,p.563-567)

이렇게 불트만은 성경신앙을 해체시키는 학자요 신앙에 해를 끼치는 인물이었다 성경을 영감된 계시로 믿는 게 아닌 신화로 취급하고 신약에 기록된 기적들이 역사적 사건이 아니며 동정녀 탄생, 빈무덤, 주예수의 육체적 부활을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재림 또한 역사적 사건일 수 없다고  한다 이런 그의 비신화화(Entmythologisierung)란 이름의 성경 해체와 파괴 작업은 인본주의적 교만의 산물로써 교회 신앙의 적과 다름없는 작품들이다 도올이 이런 사람을 ‘20세기 서구의 가장 위대한 성서신학자’라고 존숭하고 있으니 도올의 멘탈이 성경계시의 도그마와 같이 갈 수 없는건 자명한 이치고 그 결과는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다

인간은 일생을 관계하면서 사는데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정신은 관계하는 대상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신을 만들어 간다 도올이 자유주의 신학교인 한국신학대학을 가지 않고 안병무 유동식 같은 학자들보다 총신이나 고신 같은 학교를 만났으면 달랐을 것이다 루돌프 불트만에 대해서도 한국신학대학은 큰 학자요 거대 아이콘으로 가르쳤겠지만 총신이나 고신 합신이라면 전혀 아닐 것이다 매우 경계해야할 이단적 학자로 가르칠 것이니 이렇게 만남과 관계하는 대상은 중요한 것이다 성경을 비판하고 그 영감과 계시성을 비판하거나 허무는 신학은 백해무익이요 영혼을 고사시키는 행위다 성경계시를 인간이성이 난도질 해버리면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과 끊어지게 마련이고 그 결과는 영혼이 탕자가 되어 쥐엄열매로 연명하게 된다(눅16)

나온 김에 총신대 총장을 역임하고 한국의 대표적 칼빈주의자인 정성구 박사가 설교에서 한 내용을 한 부분 교훈 삼고자 한다 정성구 박사가 화란에 유학 가서 칼빈주의의 대가인 헤르만 도예베르트를 뵙고 칼빈주의의 핵심이 무엇인지 질문했더니 도예베르트께서 시편 119편 105절을 읽음으로 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주의 말씀은 내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Your word is a lamp for my feet, a light on my path.

그렇다 도올이 지금이라도 불트만 같은 길에서 떠나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신앙의 실존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해 보는 건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볼 때 무리일 것이다 오직 다메섹 도상에 나타나사 직접 바울을 만나주신 주 하나님의 초자연적 권능의 역사라면 가능할 것이다 도올은 여하간 살아생전에 이 성경 파괴의 악설들을 폐기해야 한다 이것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엔 두려움과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지 모른다

도올은 불트만 크로싼 스타일들이나 큐와 도마책 등과 과감히 결별하고  계시의 말씀 자체에 감동 받고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 집을 향한 패턴으로 자신을 급회전 시켜야 한다 어떻게 일생 태어나 평생 새벽기도하신 어머니의 기도로 자란 사람이 일생 심혈을 기울여 성경 파괴와 교회 신앙 해체에 올인하냔 말이다  도올이 그랬다고 교회 신앙에 변동이오거나 기독교가  성경 버리고 큐자료나 뒤질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큐는 없는 것이고 도마책은 영지주의 이단의 허접스런 토크일  뿐이다  애시 당초 도올이 어떻게 하다가 함석헌 옹 쪽을 비롯한  자유주의 학자들과 접촉됐는지 모르나 (혹시 형인 김용준 교수의 영향이었을까 그 교수님은 함옹과 가까웠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도올이 그 학구적 열정과 탐구심, 발품을 팔고 다니며 세계를 누비고 애써 연구한 노력은 가상하다 정통주의 신학을 했다면 성경과 기독교회의 신앙을 변증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성경 파괴요 교회신앙 해체여서 그렇지 도올의 탐구심만은 귀한 달란트다 한국교회의 어느 목회자 어느 신학도가 도올처럼 처절하게 구도적 몸부림 했는가  없었다. 필자는 도올의 기독교에 대한 주장과 발설들은 맹폭하지만 그의 노고와 애쓴 흔적은 한국 교회의 누구도 모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긴다 목회자요 신학도란 사람들이 처절한 구도적 고뇌는 없이 주입식교육 받고 교회나 학교에 취직하듯 들어가 생계유지나 하고 있으니까 도올의 눈에 우습게 보일 것 아닌가

도올의 교만에는 교계 지도자급들의 책임 크다 이런 허풍 낭설에 불과한 말을 떠들어 대도 누구 하나 논박하지 않고 심지어 부추겨주기까지 하니까 얼마나 교만해질 것인가 도올의 눈에 한국의 누가 자기만큼 성경 가지고 고민하고 탐구하며 씨름했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각종 악담을 퍼부어 대는 것이다 도올은 마치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호령하던 기분일 것이다 자존심도 없나 어떻게 도올의 악설을 두고 루터와 칼빈이라고 하며 그 책에 추천서를 써주고 심지어 신학교 석좌교수까지 시키냔 말이다 어떻게 보수란 자들도 도올을 물고 늘어지는 자 한명도 없냔 말이다 모두 교회나 학교란 직장 얻고 밥벌이하려고  공부들 하고 그놈의  학위니 졸업장이니 밝히고 다녔나!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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